대기업 A사에 근무 중인 B씨(37·여)는 지난달 육아휴직에서 복귀한 뒤 낭패를 겪었다. 취업 이후 줄곧 마케팅 업무만 맡아 왔는데 난데없이 다른 업무가 주어졌다. 회사에선 “그쪽에 사람이 부족해서 그러니 양해해 달라”고 했지만 납득하기 쉽지 않았다. B씨는 불이익을 걱정해 법정 기한보다 짧은 ‘6개월짜리 육아휴직’을 했는데도 돌아온 것은 ‘혹시가 아닌 역시’였다.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할까 고민하던 B씨는 더 큰 불이익을 받을까봐 생각을 접었다.
2013년 러시아 수출 담당 경력직으로 대기업 C사에 입사한 D씨(39·여)는 육아휴직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뻔했다. 지난해 12월 복귀 예정이었던 D씨에게 회사는 “러시아 수출이 힘들어 인원을 줄이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남편이 간암 수술을 받고 휴직 중이라 수입이 절실했던 D씨에겐 청천벽력이었다. 체념하고 퇴직하려던 D씨는 주변 권유로 노무사와 상담을 했다. D씨는 노무사 조언대로 회사에 항의한 끝에 올해 말까지 1년간 한시 계약을 조건으로 복직했다. 기존에 하던 일과 전혀 상관없는 업무였지만 방법이 없었다. D씨는 “여전히 가시방석”이라고 전했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정부 정책이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제도는 잘 구비돼 있지만 간과하고 지나치기 쉬운 ‘구멍’이 많다. 이렇다보니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이 직장 여성들에게 뿌리를 깊게 내린다. 이는 ‘아이를 낳지 말자’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맹점은 수치로 드러난다. 국민일보가 12일 고용부로부터 받은 최근 3년간 ‘육아휴직 관련 사건 접수 및 감독 시 적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적발된 육아휴직 위법 행위는 연간 150건이 안 된다. 2016년 101건, 지난해 135건이었다. 육아휴직을 주지 않거나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 등 부당한 처우를 한 사례, 육아휴직 후 동일 업무로 복귀토록 하는 의무를 위반한 사례를 모두 모은 것이다. 경제활동이 왕성하고 출산율도 가장 높은 만 28∼34세 여성 인구가 207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그만큼 정부 정책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일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육아휴직 후 복귀율은 2015년 기준으로 10∼99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66.9%, 100∼299인은 71.9%에 불과하다. 사업장 규모가 500인 이상은 돼야 그나마 복귀율이 80%를 넘어선다. 1000인 이상 사업장은 81.9%였다. 규모가 작은 회사일수록 ‘육아휴직’은 ‘퇴사’에 가깝다.
문제는 자발적 신고 없이는 육아휴직자를 보호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2016년 신고된 101건 중 고용부의 근로감독 과정에서 적발된 것은 6건(5.9%)에 불과하다. 지난해에는 135건 가운데 28건(20.7%)으로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신고를 독려하기에는 신고했을 때 닥칠 수 있는 ‘더 큰 불이익’을 막아줄 만한 장치도 없다.
전문가들은 여성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저출산 해소, 경단녀(경력단절 여성) 감소는 힘들다고 본다. 한국고용정보원 정한나 연구위원은 “육아휴직이 경력단절로 이어지는 이유는 복직 후 직장에서 바뀐 근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고용부의 근로감독이 유독 육아휴직 부분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점도 개선해야 한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지난달 9개월에 걸친 조사를 마무리하면서 “불시 근로감독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단독] 육아휴직 복귀하니 업무가 바뀌고 책상이 사라졌다, 기업 현장의 구멍들
입력 2018-08-13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