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거룩하고 보편적인 하나의 교회를 세우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 후 지금까지 변함없지만 세상 속 교회는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왔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권위와 능력을 왜곡하면서 하나님의 자리를 위협하고 말씀을 세상의 편의에 맞추어 가기 시작했다. 그 절정에 이른 중세시대에 분연히 일어난 종교개혁자들이 교회를 바른길로 돌아오게 했고 교회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성경을 재발견하면서 개혁을 거듭해왔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개혁된 교회라고 하면서도 성경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인간의 지식을 기준으로 삼은 결과 교회는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유한한 학문의 대상으로 삼아 분석하고 비판하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으로 분석하고 평가할 수 없는 분이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오직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성령을 통하여 계시하실 때에만 가능해진다. 신학을 ‘하나님에 대하여 말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신학의 주체는 인간이 된다. 그러나 신학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라고 해석할 때 비로소 신학의 주체가 하나님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회복해야
많은 크리스천이 십자가와 부활, 내세의 소망이 없는 세속적 메시지에 길들여져 있다. 이 모든 문제는 잘못된 신학에서 시작된다. 종교개혁자의 ‘5대 솔라(Sola)’를 바탕으로 정립된 개혁주의신학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다면 사람을 살리는 신학이 되지 못한다.
로마서 7장 18∼20절은 “내 속에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말씀한다. 비록 머리로 개혁에 동의하고 입술로 개혁을 외친다 해도 우리 안에 있는 죄악의 본성으로 인해 우리 삶이 죄 속에 거한다는 말이다.
개혁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할 때 가능하다.(요 15:5) 육체의 욕심이 나를 지배한다면 개혁은 어렵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은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개혁주의신학을 실천하는 운동이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어떠한 열매도 맺을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다.
개혁은 말씀의 권위 회복하는 데서 시작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선 먼저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신학을 가르치고 배울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태도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참 생명을 얻으려면 하나님 말씀을 마치 사람의 말로 대해서는 안 된다.
디모데전서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성경은 비록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기록하셨지만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이 사실을 명확히 고백하고 가르치지 않는 신학교육은 아무 의미가 없다.
많은 신학교들이 하나님의 말씀인데도 성경의 사회 문화 역사적 배경에만 주목하고 있다. 성경이 모든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서 우리 신앙과 삶의 절대 기준인데도 불구하고 기록된 시대와 관련해서 의미있는 책으로 여기는 잘못된 경향이 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인간 기자에게 관심을 둔 나머지, 성령 하나님께서 모든 성경의 저자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바른 신학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믿음과 분별력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과 사람들의 말을 서로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아무것이나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분별해내는 영적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의 영광 보좌를 비워두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신 것을 믿어야 한다. 또한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을 믿어야 한다. 죽으셨던 예수님이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신 것을 믿어야 한다.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 그리고 부활을 믿고 우리를 위해 다시 오실 재림주가 되심을 믿어야 한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확실히 소망할 때 우리의 믿음은 점점 견고해진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만 믿는다. 내 생각과 내 잣대로 믿는 것이다. 우리의 부패한 마음 때문에 믿음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머리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가슴과 무릎으로 내려와야 한다. 믿음은 내 육체와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내 육신을 죽이고 영으로 사는 것이다. 그래야 믿음을 자기 멋대로 이해하지 않고 성경에 따라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육신의 삶도 중요하다. 그러나 육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우리 속에 영이 살아 있어야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생명을 받아 누리고,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를 간구해야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받을 때, 우리는 육체의 욕망을 이기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성령 충만을 위해서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호흡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 생명은 메말라 버린다. 내가 가진 생각이나 학문과 지식으로는 올바로 기도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 기도는 어렵지 않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루하루를 기도로 살아갈 때 낙심하지 않고 영생을 거두는 기쁨으로 세상을 이기게 될 것이다.
제2의 종교개혁을 위해 기도하며
종교개혁 500주년이 지난 지금, 제2의 종교개혁이 절실하다. 개혁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다. 우리의 힘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다. 부패한 죄성을 버리지 못하고 명예와 물질을 위해 다툼과 분열, 거짓을 행하는 우리 자신부터 개혁해야 한다.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문제이고, 성도들이 문제가 아니고 목회자들이 문제다.
먼저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개혁이 가능하다. 목회자들부터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고 전해야 한다. 그리고 신학자 목회자 신학생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 영혼을 살리고 교회를 새롭게 하는 제2 종교개혁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개혁주의생명신학을 통해 한국교회에 다시 약동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영이 마른 뼈에 들어가서 큰 군대가 된 것처럼 성도들이 영적으로 살아나기를 기도한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성령의 강수가 광야에 꽃을 피우고 죽음의 바다를 살린 것처럼,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말씀이 세상을 살리기를 원한다. 두 막대기가 예언자의 손에서 하나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찢겨진 몸이 연합하고, 갈라진 한반도가 하나 되기를 소망한다. 성령이여, 오셔서 교회를 살리소서!
장종현 목사 (백석대 총장)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한국교회에 생명력을] 신학은 학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다
입력 2018-08-13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