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 없는 약은 없다. 그래서 약은 가급적 안 먹거나 적게 먹는 것이 좋다. 2001년 의약분업을 시행한 목적 중 하나는 국민들에게 병의원에 가서 의사 처방을 받은 후 다시 약국에 가서 약사 조제를 받도록 하는 두 번의 불편을 겪게 만들어 가급적 약을 적게 먹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2012년 11월15일부터 시행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제도’는 국민들로 하여금 약을 많이 복용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해열진통제 5품목, 감기약 2품목, 소화제 4품목, 파스 2품목 등 총 4개 적응증 13개 품목을 24시간 연중무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판매하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대한약사회는 안전상비의약품 대표주자격인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의 심각한 부작용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술을 마신 후 타이레놀을 복용하게 되면 치명적인 간독성을 일으킬 수 있고, 외국에서는 자살 수단으로 타이레놀이 자주 악용되고 있다며 안전상비의약품에서 타이레놀을 제외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소비자단체는 그렇게 위험한 약이면 일반의약품이 아니라 의사의 처방에 의해 조제해야 하는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해야지 편의점에서 판매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난센스라며 반박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제산제, 지사제, 화상연고, 항히스티민제 등을 안전상비의약품에 포함시켜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논의를 진행중이다. 작년 12월4일 열린 5차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 회의에서는 약사회 추천 위원의 자해소동으로 회의가 무산됐고, 지난 8월8일 6차 회의에서도 최종 결론을 내지 못하고 파행을 계속하고 있다.
국민들의 뇌리에는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처방과 조제 원칙을 설명하는 슬로건이 뿌리 깊이 박혀있다. 그런데도 유독 일부 일반의약품에 대해서는 약국 약사가 아닌 비전문가인 편의점 점원이 판매하는 것에 대해 다수 국민들이 반대하지 않는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의약분업 이후 지난 17년간 약사 스스로가 만든 결과다. 한자성어로 표현하면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편의점 점원에 의해 판매되고 있는 13개의 안전상비의약품은 약국에서도 판매하고 있지만 약사도 대부분 복약지도를 하지 않고 있다. 어떤 약국에서는 약사가 아닌 일반 직원이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약국 현장을 오랫동안 보아온 국민들이 야간·심야·공휴일에 아팠을 때 약을 구하지 못해 결국 응급실에 가서 비싼 검사비를 지불해본 경험이 한번만 있어도 24시간 편의점에서 일반의약품을 판매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안전상비의약품을 약국에서 판매할 때 약사의 복약지도 변화를 국민들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심야약국 운영도 전국에 30∼40개에 불과해 활성화돼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제산제, 지사제, 화상연고, 항히스티민제 4개 품목을 추가로 안전상비의약품에 포함시켜 24시간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약사회가 강력 반대하는 것은 국민 정서나 여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결과다. 약사의 전문성은 복약지도에 있다. 안전상비의약품을 판매함에 있어서 편의점 점원과 극명한 차이를 보여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그런데 약사들은 복약지도 무기를 그동안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 같다. 복약지도보다는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안전상비의약품의 설명서가 더 이해하기 쉽고, 인터넷에는 안전상비의약품 복용 관련 각종 정보들이 넘쳐난다. 그렇더라도 약사의 전문성은 ‘복약지도’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이 복약지도를 더 전문화하고 환자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을 약사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안전상비의약픔에 몇 가지 적응증이나 품목을 더 추가하거나 빼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 보다는 약국의 약사가 편의점 점원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복약지도를 해야 하고, 야간·심야·공휴일 일반의약품 구입 불편을 해소하는 공공심야약국 운영 등의 공익적 노력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해야 안전상비의약품의 적응증과 품목 확대를 요구하는 시민단체와 소비자단체의 요구나 정부 당국의 방침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약사회가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안전상비의약품 적응증과 품목들은 앞으로도 계속 더 늘어날 것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안기종의 환자샤우팅] 확대되는 ‘일반약 편의점 판매’ 약사회는 어찌해야 막을수 있을까
입력 2018-08-12 2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