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 난치성 질환인 만성통증을 앓는 환자들의 관리가 시급하다. 만성통증은 뚜렷한 원인도, 치료법도 알려져 않지만, ‘악마의 병’으로 불릴 만큼 극심한 통증이 수반되는 탓에 환자들의 고통은 상당하다. 환자들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외관상 ‘특별한’ 장애가 없다는 이유로 장애 판정조차 받고 있지 못하다. 가뜩이나 고단한 환자들은, 그러나 질환의 몰이해와 편견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만성통증의 발병 원인은 환자마다 제각각이다. 기자가 만난 이언명씨(가명·46), 서영선씨(가명·50), 박수현씨(가명·40)는 교통사고와 정신과 문제 등을 겪고 난 뒤 통증이 생겼다. 병의 원인은 일정부분 치료됐지만, 증상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치료법이 없다보니 진통제로 통증을 완화하는 게 사실상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전부다.
이언명씨는 4년 전 교통사고 직후 전신에 걸친 통증으로 고통 받고 있다. 그의 몸은 정상인보다 차갑다. 40도를 육박하는 날씨에도 그는 겨울옷을 입어야 한다. 에어컨 바람도 쐴 수 없다. 찬 바람이 몸에 닿으면 이내 통증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이씨는 “사고 직후 몸이 굳고 전신의 통증은 계속 됐다. 바람만 스쳐도 기절할 정도의 통증이다. 통증 강도는 수치로 나타내는데 9∼10번 강도의 통증이 밀려와 자주 정신을 잃었다. 통증 때문에 이를 악물다보니 이가 다 깨졌을 정도”라고 말했다.
박수현씨는 손목 수술 후 통증이 생겼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며 가사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던 박씨는 현재 물병을 쥐는 것조차 힘겹다. 그는 “손바닥 가운데 보이지 않는 쇠파이프가 박혀 있는 것 같다. 손바닥은 주변 피부보다 7도가 낮다. 온도 차이 때문에 손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뜨겁고 손바닥은 찢어질 것처럼 아프다”고 증상을 설명했다.
서영선씨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현재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도 수년간 집에 머물며 통증과 씨름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통증은 여전히 그의 몸을 수시로 파고든다. 서씨는 “통증 조절이 전혀 안됐다. 여러 치료를 받았지만 도무지 통증이 가라앉질 않았다”고 말했다.
서씨의 통증은 우울감과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병의 원인은 나아졌지만, 통증은 점차 강도를 더해갔다. 서씨는 “통증이 오면 영하의 추위 속에 알몸으로 내던져진 것 같다. 온도가 급격히 낮아지다 보니 살갗이 찢어지는 것처럼 느낀다”고 울먹였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도형 교수는 “통증에는 급성 및 만성이 있다”며 “문제는 의사와 환자 모두 통증의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함몰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만성통증은 그 자체가 질환으로, 검사 결과 뚜렷한 이상이 없으면 의사는 환자의 증상을 의문시하고, 환자는 오진을 의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만성통증은 진행형인 질환이다. 치료법이 없다보니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대표적인 게 가정 경제의 파탄이다. 일부 예외의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의 통증 환자들은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한다. 24시간 곁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통증을 경감시키는 약값에 매달 상당한 금액을 지출해야만 한다. 수입은 없는데 지출은 많으니 가족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약값을 해결해도 매월 들어가는 수백만 원의 의료비 지출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다보니 불화가 생겨 가정이 붕괴되기도 한다.
이언명씨는 “사우나나 요양병원을 전전했고 현재는 동생 집에 얹혀 지내고 있다”며 “약값은 동생들이 빚을 내서 겨우 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영선씨도 운영하던 회사를 접고 수년간 동생의 보살핌을 받았다. 서씨는 “진통제의 약효가 떨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약값만 한 달에 700만원이 들었다. 가족들이 생활비와 약값을 대줬다. 집이 넉넉한 편이 아니라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통증을 참아가며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을 했다”고 털어놨다.
박수현씨는 최근 남편과 싸움이 잦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병원비와 약값에 박씨 가정 경제는 거의 파탄 지경이다. 돈에 쪼들리고 수시로 찾아오는 ‘돌발통’에 박씨는 조그만 일에도 화가 나고 신경이 곤두선다. 박씨는 “답답하다”고 한탄했다.
“병원에 입원하면 한 달에 500만원∼600만원이 든다. 지난해 수술을 하느라 이미 2000만원을 썼고, 약간의 보험 혜택을 받고 있지만 약값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남편 월급의 대부분은 내 병원비로 쓰인다. 남편과 시댁에 미안하고 면목이 없다.”
‘긴 병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만성통증이 그렇다. 환자 본인과 가족들은 기약 없는 통증의 구렁텅이에서 돈과 통증, 그리고 편견에 시달린다. 통증의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강도형 교수는 “통증은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고 말했다.
“환자-의사는 물론 가족간의 관계도 틀어지기 일쑤다. 가장 큰 문제는 감정조절, 즉 분노조절이 안된다는 점이다. 만성통증 환자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얼마나 아플까. 덜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부터 한다. 자괴감과 무기력감, 가족과 친지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위축되고 괴로워한다.”
만성통증 환자들의 일상은 투쟁에 가깝다. 싸움의 대상은 외부에 있지 않다. 시시각각 몸을 조여 오는 통증과 환자들은 매순간 사투를 벌인다. 수년간 병원비와 약값에 가정은 파탄 지경이 되고 통증에 넌덜머리가 난 나머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병원도 만성통증 환자를 기피한다. 마약성 진통제 처방에 부담을 느끼거나 타 환자에 비해 배로 손이 가는 통증 환자들이 병원 입장에선 달가울 리 없다. 그나마 서울대학교병원에서는 통증 경감에 필요한 진통제를 처방해주고 입원 치료, 협진이 가능해 환자들이 몰려들었지만, 이마저도 병원 정책 변화로 과거의 일이 됐다. 이에 대해 서영선씨는 울화통을 터뜨렸다.
”서울대병원에서 받아오던 진통제 처방이 작년부터 금지되다시피 됐다. 줄곧 복용하던 약들을 갑자기 못쓰게 된 거다. ‘내가 죽어야 되나 보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통증 때문에 사경을 헤매다시피 했다. 응급실에 가면 의자에 쪼그려 앉아있다 진통제를 겨우 맞고 집에 돌아와야 하는 식인데, 그 약도 통증을 멎게 하진 못했다.”
박수현씨는 “치료를 포기하겠다”고 말한다. “돌발통이 와 혈압이 180∼200까지 치솟으면 숨도 못 쉴 정도로 고통스러워 하니까 병원에서 진통제를 처방해줬다. 그런데 갑자기 ‘마약성 진통제는 안 된다’고 하루아침에 끊어버렸다. 돌발통이 왔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줘야하지 않나. 최소한의 희망은 갖고 살게 해줘야 한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통증환자를 꼭 마약 중독자처럼 몰면 어떡하나. 지금 당장 아파 죽겠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란 말인지 모르겠다.”
병원들이 마약성 진통제 처방에 제한을 두는 것은 사실 보건당국의 방향과 궤를 같이 한다. 프로포폴 등 마약류 남용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정부는 일괄적으로 진통제 처방에 제한을 두고 있다. 여기에 질환과 의료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공론식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직격탄을 맞은 만성통증 환자들은 흡사 본인들을 ‘마약중독자’나 ‘약쟁이’로 치부하는 것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만성통증 환자들은 진통제 처방을 받을 수 있는 암환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서영선씨는 “진통제를 복용하면서 공부와 일을 병행했다. 글도 쓰고 조카도 키웠다. 일을 하면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적도 없었다. 진통제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하다”고 일축했다.
서울대병원 강도형 교수도 “통증은 진행된다. 환자들은 직장을 잃고 감정적·정서적 어려움을 겪는다.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환자들이 늘면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치료 방향 및 자살하는 환자들의 관리나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만성통증을 바라봐야 하는데, 오직 ‘통증’이나 마약논쟁으로 축소해 환자들을 바라보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김양균 쿠키뉴스 기자 angel@kukinews.com
24시간 투쟁 연속… ‘약쟁이’ 멍에 벗었으면… 진통제 일괄제한에 환자들 패닉 상태
입력 2018-08-12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