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8일 발표한 3년간 180조원 투자 결정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정부의 요청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통 큰’ 결단으로 화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가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으면 삼성의 경쟁력 강화와 중소기업 상생, 경제 활성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삼성이 계열사 전체를 아우르는 투자계획을 발표한 것은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와 차이가 있다면 이번 투자 및 채용 계획은 계열사별로 이사회를 거쳤다는 점이다. 삼성 관계자는 “계열사별로 이사회를 거친 계획을 취합한 내용이 전부”라고 말했다. 이사회라는 공식적인 의사결정 절차를 밟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의 결단이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삼성전자가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9일 문재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만난 이후 투자계획을 고민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보수적인 방향으로 계획을 만들 것으로 예상해 왔다. 대법원 선고를 앞둔 이 부회장이 정부의 요청에 너무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삼성전자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국가경제에 기여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은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이지만 투자 규모가 성공에 비례한다는 보장은 없다. 투자를 늘리는 것은 성공을 위해 더 노력해 달라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지난 6일 이 부회장이 차세대 반도체 경쟁의 성패를 가를 극자외선 노광장비(EUV) 개발 라인을 ‘깜짝 방문’한 것도 이번 투자와 무관치 않다. 초미세공정을 선도해 부동의 1위인 메모리 시장에서 지위를 공고하게 하고 시스템반도체로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3년간 해마다 60조원가량을 투자키로 한 만큼 반도체 분야에서 신기술 확보를 위한 노력은 더욱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스마트폰용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투자가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 세계 디스플레이 제조업체 중 중소형 OLED는 삼성디스플레이가 독보적인 1위다. BOE 등 중국 업체가 추격을 선언했지만 수익성을 담보하는 양산이 가능한 곳은 삼성디스플레이뿐이다. 향후 폴더블 스마트폰이 등장하면 디스플레이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이 신성장동력으로 지목한 인공지능(AI), 5G, 바이오, 전장부품 등은 이미 궤도에 올라 있는 사업이다. 하지만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처럼 업계 선두주자라고 보긴 어렵다. 삼성은 4개의 신성장동력에 25조원을 투자해 해당 분야에서 리더십을 확보할 계획이다. 특히 바이오는 삼성이 지난 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와의 만남에서 규제 완화를 요청할 정도로 관심을 쏟고 있는 분야다. 바이오 분야는 향후 잠재력을 고려할 때 ‘제2의 반도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정부가 규제를 걷어내고 삼성이 투자를 늘리면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이날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전날보다 7.08% 올랐다.
삼성전자가 전장사업 강화를 위해 2016년 80억 달러(약 9조원)에 인수했던 하만도 점차 존재감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은 청년층 일자리 창출을 위해 4만명 직접 채용 외에 개방형 혁신 생태계 조성에 나서기로 했다. 삼성은 정부와 함께 청년들에게 양질의 소프트웨어 교육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청년들의 취업 기회 확대에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5년간 취업준비생 1만명에게 소프트웨어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전국 4∼5곳에 교육장을 마련할 예정이다. 성적 우수자에게는 삼성 관계사의 해외 연구소 실습 기회를 부여하고 일부는 직접 채용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2012년부터 사내 벤처 프로그램 C랩을 운영하고 있다. 실패해도 5년 이내 복직이 가능토록 한 게 특징이다. 삼성전자는 C랩을 5년간 500개(사내 200개, 사외 300개)로 확대해 도전하는 문화를 확대시킨다는 계획이다. 또 최근 국내 반도체 분야 교수와 전공학생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산학협력을 연간 400억원(반도체 300억원, 디스플레이 100억원) 규모에서 1000억원으로 확대한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경쟁력·상생·일자리… 예상 뛰어넘은 결단
입력 2018-08-09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