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경선의 추억, 다시 링에 오르는 올드보이들

입력 2018-08-09 04:00
정치권이 ‘올드보이’들의 귀환으로 들썩이고 있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8일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손학규 바른미래당 상임고문, 정동영 민주평화당 신임 대표,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 김진표 의원,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로 나선 이해찬. 뉴시스

손학규 바른미래당 상임고문이 8일 당권 도전을 선언했다. 가장 유력한 당권 주자로 꼽히는 손 고문 출마로 여야 주요 정당의 리더가 ‘올드보이’들로 채워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젊고 유망한 지도자를 키워내지 못한 한국 정치의 실패라는 비판적 평가가 많다.

손 고문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제도를 비롯해 잘못된 정치제도를 바꾸는 것이 내 마지막 소명”이라며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올드보이라는 평가를 의식한 듯 “‘이제 와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무슨 욕심이냐’는 만류와 비아냥을 무릅쓰고 이 자리에 섰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진보와 보수, 호남과 영남의 통합을 꾀하는 바른미래당의 탄생 대의는 올바른 길이었다. 어느 당도 갖지 못한 이 소중한 가치를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 고문의 당권 도전 가세로 정치권에는 올드보이들의 전면 복귀가 거대한 흐름이 되고 있다. 10여년 전 노무현정부 시절 정치권 중심에 있었던 인사들이 대거 당대표가 되거나 당권에 도전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인 이해찬 의원과 김진표 의원은 각각 노무현정부에서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를 역임했고,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청와대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를 지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장을 맡았다. 손 고문은 한나라당 소속 경기도지사를 지내다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해 17대 대선에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지냈다. 이 의원과 손 고문, 정 대표는 공교롭게도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를 놓고 경선을 벌인 인연도 있다.

올드보이들의 전면 복귀에 대해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손 고문과 정 대표는 과거 다른 정당에서 대선 후보로 나섰던 인사들”이라며 “지금 소속 정당에서 자신만한 인물이 없으니까 그 공백을 치고 들어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노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들의 과거 이력을 볼 때 이들의 당권 행보가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이다.

젊고 유망한 정치 지도자를 육성하지 못한 정당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권력경쟁이나 선거 과정에서 권력의 향방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한국 정당들은 안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인재를 키워낼 만한 안정적인 환경이 없으니 과거의 인물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도 “(올드보이의 귀환은)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인재 충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증거”라며 “국회의원이 100명 넘는 당에서도 당의 새로운 분위기를 이끌 만한 인재가 없으니 중진 인사들이 전면에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초빙교수는 다만 “여야 모두 지금이 아주 중요한 타이밍”이라며 “여당은 문재인정부 중반기를 잘 관리해야 하고 야당은 지지율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당의 존망이 걸려 있는 상황이니 새로운 리더십보다는 경륜 있는 안정형 지도자를 찾을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최근 정치지형을 보면 청와대 말고는 정당들이 보이지가 않는다. 경험이 적은 리더들이 헤쳐가기 어려운 상황이라 올드보이들이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형민 이종선 심우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