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들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문학평론가 황현산(사진) 고려대 명예교수가 8일 새벽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고려대 불문과 대학원에서 기욤 아폴리네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고인은 1993년부터 모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정년퇴직했다. 80년대 말부터 평론을 발표해 평론집 ‘말과 시간의 깊이’(2002) 등을 냈다. 고인은 프랑스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 작품을 열정적으로 번역했다. 아폴리네르의 ‘알코올’,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집’,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아름다운 우리말로 태어났다.
황병승 김이듬 김민정 등 난해하고 도발적인 시인들이 고인의 평문으로 발굴되고 소개됐다. 2000년대 중반 ‘미래파’로 불리는 이들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졌을 때 고인은 새로운 시도를 옹호하고 해명하는 편에 섰다. 젊은 시인들의 지지자가 된 셈이다. 말년에는 트위터를 통해 젊은 층과 소통을 시도해 팔로어가 40만명을 넘겼다.
2013년에 낸 첫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는 그를 유명 작가로 만들었다. 국민일보 등에 쓴 칼럼을 모은 이 책은 산문집으로 드물게 6만부 넘게 팔렸다. 고인은 지난해 12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지만 암 재발로 석 달 만에 사직했다. 대산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 팔봉비평상 등을 수상했다.
고인은 마지막 산문집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물어왔다. …내가 나름대로 어떤 슬기를 얻게 되었다면 이 질문과 고뇌의 덕택일 것”이란 말을 남겼다. 빈소는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0일 오전 10시다(02-923-4442).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젊은 시인들의 후원자’ 문학평론가 황현산 별세
입력 2018-08-08 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