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자택 중졸 검정고시’, TV·PC로 공부… “더워서 많이 못했어요”

입력 2018-08-08 19:10
뇌병변장애 1급인 이시영씨가 8일 서울 관악구 자택에서 중졸 검정고시를 치르기 전 시험 감독관으로부터 응시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윤성호 기자

전국에서 초·중·고졸 학력인정 검정고시가 치러진 8일, 서울 관악구 자택에서 중졸 검정고시를 치르기 위해 대기하던 이시영(40·여)씨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더워서 공부를 많이 못했어.” 테이블에 놓인 답안지를 연신 쳐다보며 어머니 박정숙(71)씨에게 하소연했다. 에어컨이 없는 집에선 선풍기가 바쁘게 돌아갔다.

이씨는 집에서 검정고시를 본 첫 사례다. 뇌병변장애 1급인 그는 스스로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없고 오른손도 쓰지 못한다. 하루 종일 누워서 생활하는 이씨에게 시험장으로 이동하는 일은 벅차다. 그를 위해 교육청이 처음으로 재택시험장을 마련했다. 시험지를 읽어주고 OMR 답안지를 대신 작성해줄 담당자를 2명 배치하고 집 내부에 CCTV도 설치했다.

이씨는 지난해 평균 78.3점으로 초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도덕은 만점을 받았다. 박씨는 “어릴 적부터 딸이 똑똑하기로 소문났었다”고 자랑했다. 생후 100일쯤 뇌성마비가 찾아온 이씨는 한 번도 학교를 다녀보지 못했다. 대신 TV와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공부했다. 어릴 적에는 ‘TV유치원’을 매일 봤고, 요즘엔 ‘도전 골든벨’을 즐겨본다.

박씨는 “시골에서 자란 데다 내가 운전을 못해 학교를 못 보냈다”며 “언제부턴가 혼자 알아서 TV를 보며 공부를 하더라”고 회상했다. 이씨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왼손으로 키보드를 치고 발로 마우스를 조작하면서 컴퓨터를 한다.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때가 가장 즐겁다고 한다.

이씨는 시집을 내는 게 꿈이다. 이번 시험에서도 국어가 가장 자신 있다. 검정고시 공부를 하면서도 틈만 나면 습작을 했다고 한다. 박씨는 “난 시는 잘 모른다”면서도 “딸이 쓴 것 중에 ‘나는 바보처럼 살련다’는 제목의 시가 있는데 꽤 괜찮다”고 말했다. ‘바보 같다’는 남들의 핀잔을 매번 웃어넘겨온 딸의 품성이 시에 오롯이 담겼다고 했다. 박씨는 “목사인 애 아빠를 닮아서 딸도 세상만사에 초연해진 지 오래”라며 “모든 걸 이해하고 용서하겠다는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 많다”고 했다.

다소 긴장한 기색이던 이씨는 격려차 방문한 조희연 교육감이 “내년엔 고졸 검정고시도 꼭 봐야 한다”고 하자 활짝 웃었다. 검정고시를 모두 통과하면 이씨는 사이버대학에 진학해 국어국문학을 전공할 계획이다. 대학에 가고 싶은 이유를 묻자 그는 배시시 웃기만 했다. 어머니는 “딸이 똑똑한 사람들은 다 대학 졸업장을 갖고 있다고 부러워한다”며 “생전에 시영이가 대학 졸업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