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혁신 1호’ 인터넷은행, 슈퍼 메기로 키운다

입력 2018-08-08 04:00
지난해 4월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는 시스템을 구축할 때 대기업이 아닌 핀테크기업 뱅크웨어글로벌과 계약을 맺었다. 고객 요구에 따라 신속하게 시스템 수정이 가능했다. 뱅크웨어글로벌의 매출액은 2015년 201억원에서 지난해 355억원으로 연평균 70% 증가했다. 직원 숫자도 160명에서 330명으로 늘었다.

최근 사업을 준비하던 오진석(38)씨는 무직 상태라서 은행에서 대출받기 어려웠다.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대출상품은 두 자릿수 금리를 적용해 이자 부담이 매우 컸다. 오씨는 인터넷은행을 통해 연 7%대의 ‘중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금융위원회는 7일 열린 인터넷은행 규제 혁신 행사에서 이런 사례들을 소개하며 문재인정부가 인터넷은행에 한해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이유를 보여줬다. 핀테크(정보통신기술을 융합한 금융서비스)를 활성화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중금리 대출시장을 키워 금융소비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늘리겠다는 의도다.

정부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로 인터넷은행을 금융권의 ‘슈퍼 메기’로 키울 계획이다. 인터넷은행이 5000명의 중·장기적 고용 유발효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동안 인터넷은행은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 올해 출범 1주년을 맞은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고객은 700만명에 이른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10분 내로 계좌를 만들고 24시간 공인인증서 없이 거래 가능하다는 점이 큰 호응을 얻었다. 해외송금 수수료는 시중은행의 10∼20% 수준이다.

다만 ‘반쪽 성공’이라는 평가도 있다. 중금리 대출 실적은 기대에 못 미친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카카오뱅크가 지난 6월 취급한 신용대출 중 94.3%는 연 5% 미만의 금리였다. 기존 은행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다른 은행들이 모바일뱅킹, 간편송금을 강화해 차별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위와 인터넷은행업계는 약점 보완을 위해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은산분리 규제는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4%(의결권 있는 주식)만 가질 수 있게 한다. 국회에는 인터넷은행에 한해 지분을 34% 또는 50%까지 보유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 계류돼 있다. 인터넷은행업계는 규제 완화를 통해 카카오와 KT가 인터넷은행에 자본을 추가로 넣으면 중금리 대출 등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핀테크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은산분리 규제를 풀어줘 문제가 발생하면 금융시스템에 큰 혼란을 끼칠 수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 의견도 ‘찬성’ ‘조건부 찬성’ ‘반대’로 엇갈린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터넷은행은 중금리 대출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 애초에 규제할 게 아니었다”며 “카카오가 재벌 대기업도 아니고 은행을 통해 산업을 지배할 여력도 없다”고 말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터넷은행은 데이터 분석이 필요한 업종이고, 대출심사 인력 등 채용이 늘어날 수 있다”며 “몇 가지 조건을 둔 상황에서 완화를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인터넷은행 규모가 어느 수준이 될 때까지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와 달리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산업자본의 은행 진출은 한 번 문제가 생기면 폐해가 너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터넷은행이 더 커지면 대마불사가 되고 없앨 수도 없다. 규제는 필요한 곳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성원 양민철 임주언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