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후퇴 논란에도 은산 분리 완화 천명한 문 대통령

입력 2018-08-07 18:17 수정 2018-08-07 21:36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행사에서 핀테크(금융과 기술의 융합서비스) 기업인 페이콕의 QR코드 간편결제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웃고 있다. 이는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촬영해 결제하는 방식으로, 소상공인의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병주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 기준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은행의 재벌 사금고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전문은행 등 신산업의 육성과 금융권 독과점 구조 해체가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은 7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은행 규제혁신 행사에 참석해 “은산분리는 우리 금융의 기본 원칙이지만 지금의 제도가 신산업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며 “인터넷은행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주주의 사금고화 등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주주 자격을 제한하고 대주주와의 거래를 금지하는 등의 보완장치가 함께 강구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융권의 독과점 구조와 나태한 개혁 작업도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그간 우리 금융산업의 시장구조는 기존 회사를 중심으로 굳어져 왔다”며 “이미 시장에 진입한 금융회사들은 경쟁과 혁신 없이도 과점적으로 이익을 누릴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터넷은행 규제혁신이야말로 고여 있는 저수지의 물꼬를 트는 일”이라며 “금융 분야와 신산업의 혁신성장으로 이어져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새로운 물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세기 말 영국의 ‘붉은 깃발법’을 잘못된 규제의 예로 인용했다. 문 대통령은 “자동차 속도를 마차 속도에 맞추려고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흔들었다. 증기자동차가 전성기를 맞고 있었는데 마차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라며 “결국 영국이 시작한 자동차산업인데도 독일과 미국에 뒤처지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방침이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상호 업종 소유 금지) 원칙을 준수하겠다는 대선 공약에서 후퇴한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신산업 육성과 금융개혁을 명분으로 정면 돌파에 나선 셈이다.

문 대통령은 금융 당국에 대해 “금융권이 자칫 기득권과 낡은 관행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도록 금융혁신과 경쟁촉진 노력에 박차를 가해 달라”고 당부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경직된 사고와 그림자 규제로 개혁의 장애물이 됐던 금융 당국의 행태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은행·증권·보험 등 전체 금융업권의 진입장벽 완화, 핀테크 혁신 활성화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인터넷은행 부스에서 가상의 신분증으로 계좌를 만들고 모바일 전월세 보증금 대출 과정을 체험했다. 그는 6분이면 대출이 끝난다는 직원 설명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또 QR코드를 이용해 800원짜리 음료수를 현장에서 결제하는 과정을 지켜본 뒤 “자영업자 카드 수수료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겠다”며 감탄했다.

문 대통령의 규제혁신 현장방문은 의료기기 규제혁신 행사에 이어 두 번째다. 규제완화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 대해 문 대통령이 연일 전면에 나서면서 혁신성장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강준구 나성원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