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VID 대신 ‘완전한 비핵화’로 완화된 ARF 의장성명, 북한 항의 효과?

입력 2018-08-06 18:27 수정 2018-08-06 20:08
4일 오후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각 국 외교 대표들이 참석하는 2018 아세안외교안보포럼(ARF)이 열리고 있다.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역내 다자협의체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에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표현이 빠졌다. 북한이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이 표현 대신 4·27 판문점 선언과 6·12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들어간 ‘완전한 비핵화’ 문구를 넣는 것으로 수위가 완화됐다.

올해 ARF 의장국인 싱가포르가 6일 발표한 의장성명에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명백한 공약과 추가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맹세를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모든 당사자들이 판문점 선언과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신속한 이행을 포함해 한반도의 평화 안정 실현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1년 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ARF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해 중대한 우려를 표하면서 CVID를 지지하는 성명이 채택됐다.

올해 의장성명 초안에도 CVID가 있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5일 브리핑 때 “대다수 나라가 CVID를 언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초 5일 오후 12시(현지시간) 발표 예정이던 의장성명이 하루가 지나 공개되면서 CVID가 빠진 건 북한의 적극적인 외교전의 결과로 해석된다. 외교부는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협의체라는 점을 감안해 의장국이 균형된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평가했다.

의장성명은 의장국이 27개 회원국의 의견을 취합해 작성하는 만큼 의장국의 권한이 세다.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ARF가 끝난 뒤에도 싱가포르에 남아 5일 저녁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무장관과 만찬을 함께했다. 발라크리쉬난 외무장관은 이 외무상과 함께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북한 대표단이 싱가포르의 도시 계획과 경제개발 과정을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이 외무상은 ARF 참석 차 싱가포르에 와서 11개국 외무장관과 양자 회담을 했다. 지난해 중국 러시아 필리핀 세 나라하고만 회담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다.

이런 가운데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날 중국 베이징에서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부장 겸 한반도사무특별대표를 만나 종전선언 문제 등을 논의했다. 조기 종전선언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판단은 한·중 정부가 일치한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최근 “종전선언은 시대 흐름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