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이 발생하자 생리대 제조업체 A사는 친환경 생리대 제작 프로젝트를 온라인 후원형 크라우드펀딩 업체에 올렸다. 후원형 크라우드펀딩은 개인·스타트업이 상품 제작 전부터 아이디어나 제작 계획 등을 플랫폼 업체에 올리고 대중의 후원금을 받아 제품을 만들거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A사의 친환경 생리대 제작 프로젝트에는 안전한 여성용품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증명하듯 대거 후원이 몰렸다. 4200여명이 1억5000만원을 후원했다. 애초 목표 모금액인 1000만원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받은 생리대는 접착제가 속옷에 묻을 정도로 친환경과는 거리가 먼 상품이었다. 항의가 속출하자 A사는 환불·교환을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A사는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주문이 들어오자 물량을 감당하기 벅찼던 것으로 전해졌다.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는 후원형 크라우드펀딩을 둘러싼 부실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상품이 후원자들과 약속했던 것과 다르게 제작되거나 몇 년째 배송되지 않는 일이 잇따른다. 올해 후원형 크라우드펀딩 업체의 누적 펀딩액은 1000억원을 돌파했다.
6일 크라우드펀딩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에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5000만원 이상이 모금됐던 ‘몰래카메라 탐지기 제작 프로젝트’가 펀딩 완료 3일을 앞두고 중단됐다. 제작자가 ‘타 업체보다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만들고 향후 몰래카메라 탐지 관련 애플리케이션도 개발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후원자들이 거세게 항의했다. 지난해에는 게임화면의 언어 번역기를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1700여만원을 모았지만 개발 과정 중 무산됐다. 후원자 1423명 중 다수는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는 상품이 미완성 상태이므로 일반 인터넷 쇼핑몰보다 소비자의 위험 부담이 높다. 하지만 소비자 보호 장치는 부실하다. 현행 전자상거래법은 ‘완성형’ 제품 거래에만 적용된다. 때문에 미완성인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 상품을 후원하는 소비자들은 판매자 신원 공개, 청약 철회(환불) 등 권리를 보호받지 못한다. 후원자는 익명의 제작자와 오직 온라인 메시지를 통해서만 소통할 수 있다. 상품의 제작 기간이나 성능 등이 당초 약속됐던 것과 달라도 환불을 받기 쉽지 않다. 민법상 계약 파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를 따져야 하는데 소비자보호 범위가 전자상거래법보다 훨씬 좁다. 상품 설명에 ‘제작이 예상보다 더 걸릴 수 있다’라는 한 문장이 포함됐다면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식이다.
윤민섭 한국소비자원 책임연구원은 “크라우드펀딩을 전자상거래법의 보호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소비자들도 크라우드펀딩이 완제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 꼼꼼하게 상품설명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처음 창업한 사람들은 실수가 많으므로 제작자와 소비자를 중개하는 플랫폼 업체가 물량이나 제작기간 등을 잘 조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누적 금액 1000억원 넘긴 크라우딩 펀딩 부실 경고음
입력 2018-08-07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