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한 전 대법관은 1일 퇴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법의 권위는 국가 경영의 두 영역 중 이른바 위엄의 영역에서 필수적이다. 사법 권위의 하락을 막아야 한다.” 맞는 말인데 할 말은 아니었다. 지금 땅에 떨어진 사법부 권위는 누가 깎아내린 게 아니라 스스로 차버린 것이다. 법원행정처 문건이 추가로 공개되면서 재판 거래 의혹은 더욱 커졌지만 그런 거래가 실제로 있었느냐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이런 문건을 법원이 작성했다는 사실, 문건에 담겨 있는 법원의 인식이 사법 권위를 추락시켰다. 판결을 흥정 수단으로 여기는 재판부를 어떻게 믿을 수 있으며 누가 그 권위를 인정해 주겠는가. 고 전 대법관은 문제의 문건이 만들어진 행정처 수장을 지냈고 의혹이 제기된 여러 사건에도 관여했다.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통렬한 자성을 말했어야 한다. 그가 권위의 하락을 막자고 역설한 날 법원은 행정처와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또 모조리 기각했다. 사법부를 더 믿을 수 없게 만들고 권위를 더 떨어뜨리는 처사였다.
새 대법관 3명이 취임했다. 하나같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일한 길은 의혹의 진상을 명확히 밝히고, 문건의 발상이 나오게 된 조직문화를 바로잡고,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한 판례를 쌓아가는 것이다. 이제 대법원은 문재인정부에서 임명된 대법관이 14명 중 8명을 차지해 과반이 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은 절반 가까이 교체됐고 문 대통령은 재임 중 5명을 더 임명한다. 본격화된 사법 주류의 변화가 보수에서 진보로 이동하는 진영의 교체에 그친다면 권위 회복은 요원하다. ‘진보 성향 대법원’이란 색안경을 끼고, ‘재판 거래 대법원’이란 의심을 품고 판결문을 읽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시선을 불식시킬 만큼 독립적인 재판과 공정한 판결이 이뤄져야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다.
사법 권위는 하락을 막을 게 아니라 새로 쌓아야 할 만큼 허물어졌다. 이동원 대법관은 취임사에서 “국민은 재판이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의심을 해소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고통스럽겠지만 가야 할 길이다.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라.
[사설] 주류 교체 시작된 사법부, 추락한 권위 회복하려면
입력 2018-08-03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