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한 물주전자 vs 얼린 생수’… ‘살인 더위’ 사업장 안전대책도 ‘극과 극’

입력 2018-08-02 04:01
살인적인 폭염이 지속되는 가운데 1일 오후 세종시의 한 공공기관 발주 건설 현장이 텅 비어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와 지자체·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 현장에서 낮시간대 작업을 중지하고, 덜 더운 시간대에 일하거나 작업을 연기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뉴시스

‘미지근한 물주전자 VS 얼린 생수’ ‘굵은 소금 VS 식염포도당’ ‘달궈진 중장비 VS 에어컨 전기차’….

살인적 무더위 속에서 전국 각지의 사업장이 ‘극과 극’의 폭염체험 현장이 되고 있다. 견디기 어려운 폭염이 이어지고 있지만 근로자들의 안전을 위해 대처하는 사업장의 대응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외부 작업을 최소화하기 위해 휴식시간을 보장하고 체온을 낮추기 위한 장비·음식을 준비하는 곳도 있지만 휴식시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채 미지근한 물과 소금만으로 더위와 싸우는 현장도 적지 않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폭염에 대응하기 위해 각 건설현장에서 총체적 대책을 세워 실행하고 있다”고 1일 밝혔다. LH는 폭염주의보가 발령되면 오후 2∼5시에 최소한 3회 이상 휴식시간을 보장하도록 했고 폭염경보가 내려졌을 때는 무조건 공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휴식시간에 쉴 수 있는 쉼터와 체온을 낮춰주는 얼음조끼, 음료수 제공은 기본이다.

우정사업본부 역시 강도 높은 폭염 대책을 추진 중이다. 집배원들을 위해 우편용 초소형 전기차 48대를 전남 나주와 여수 등의 우체국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다. 배달원들은 에어컨이 장착된 전기차로 골목골목을 누빈다. 우정사업본부는 연말까지 우편·택배용 전기차 1000대를 추가 도입하는 등 2020년까지 우편배달 오토바이 1만5000여대의 66%인 1만대를 냉방이 가능한 초소형 전기차로 바꾸기로 했다. 전남우정청은 광주·전남지역 1600여명의 집배원들에게 얼음생수와 식염포도당, 아이스팩, 오토바이 쿨시트 등을 매일 지급하고 휴식시간을 배로 늘렸다.

반면 전국 각지의 민간 건설현장 상당수는 에어컨 등 냉방 사각지대로 폭염 대책이 ‘그림의 떡’이다. 일부 영세한 건설현장에서는 주전자나 식수통에 담긴 미지근한 물이나 염분 보충용 소금을 나눠주는 게 대책의 전부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광주와 전북 전주에서는 아파트 건설현장 비정규직 근로자가 작업 도중 의식을 잃고 숨지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고 부산에서는 이삿짐센터 직원이 온열 증세로 사망했다.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없는, 달궈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위에서 쉬지도 못한 채 공사 기한이나 이사 날짜에 맞추기 위해 작업을 강행하다보니 빚어진 사고다.

이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는 민간 건설현장 등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폭염경보 때 건설·산업 근로자는 시간당 15분씩 휴식을 취하도록 하고 제대로 지켜지는지를 꼼꼼히 살필 예정이다. 서울 영등포구(구청장 채현일)는 3일까지 관내 연면적 200㎡ 이상 중·대형 건축공사장 41곳을 대상으로 건축과 공무원이 직접 현장을 방문해 폭염 대비 행동요령을 잘 지키고 있는지 점검한다.

광주지역 건설현장 근로자 최중호(49)씨는 “정부와 지자체는 극한 폭염을 재난으로 규정한다고 말잔치만 하지 말고 공공·민간 부문을 구분하지 않는 구체적 기준과 대응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김유나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