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 이후 50여일, 2년여 남은 21대 총선. 선거공백기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없는 현 시점이 적기라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안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국회에 입성한 뒤 꾸준히 도입을 주장해 온 숙원이기도 하다.
다만 2015년에도 활발했던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기에 이번에도 지지부진한 공방만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도 있다. 하지만 3년 전과 다른 점은 여야가 기본적으로 선거제도 개혁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새누리당이 반대했던 개편안에 대해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선거구제 개편에 전향적인 입장을 통해 선거제도 대변혁을 이끌고 그 중심에 서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거대 정당 독과점 막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수가 결정된다. 유권자가 행사한 정당투표의 결과로 총 의석을 산출한 뒤 지역구 선거의 당선인만으로 의석을 채울 수 없을 경우 비례대표로 나머지 의석을 채우는 방식이다. 가령 전체 의석이 300석인 경우 A정당이 정당투표에서 25%를 득표했다면 총 75석을 갖게 된다. 이 가운데 지역구 의석이 20석에 불과하다면 나머지 55석은 비례대표로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주로 군소 정당이 요구해 왔다. 현행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지역구의 1위 득표자 253명을 뽑는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와 정당 지지율에 비례해 47명의 의원을 배분하는 ‘비례대표제’를 혼합한 형태다. 지역구와 비례 의석 비율이 5.4대 1로 거대 정당이 의석을 독과점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사표 발생,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 사이의 불일치, 지역주의 정당 체제 고착화라는 본질적 한계를 가진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15년, 흐지부지된 선관위의 제안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5년 2월 ‘지역주의 완화와 유권자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는 선거제도 개선, 정당정치 활성화’ 방안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는 선거구 획정의 인구비례 기준을 두고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때라 선거구의 대폭적인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전국 단위의 공직선거가 없던 해라 선거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적절한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반대 목소리를 냈다. 표면적으로는 의원수 증가, 직능대표제 왜곡 등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과반 의석 확보가 불투명하다는 맹점이 있었다. 당시 새누리당 싱크탱크였던 여의도연구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전제로 19대 총선 결과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평균 13석이 감소했고 모든 경우에서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다고 한다.
2018년, 국회의장이 쏘아올린 작은 공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달 18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꺼낸 의제는 선거제도 개편이었다. 문 의장은 “선거제도 개편이 따르지 않는 개헌은 의미가 없다”며 “선거제도 개편만 합의하면 정치개혁을 제일 많이 한 국회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득표하는 만큼 (의석이) 비례되지 않고 의석수가 결정된다는 건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 득표수에 비례하는 원칙에 전 국민이 동의한다”며 “여야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한목소리로 환영했다. 바른미래당은 여야 대표 회담을 제안했고 정의당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심상정 의원에게 맡겨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 불을 지필 것을 예고했다.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는 고 노회찬 의원 빈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선거제도 개편 문제는 고인이 마지막까지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애착을 보였던 과제였다”며 도입에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무르익은 분위기, 관건은 여당의 의지
문제는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서느냐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중선거구제(작은 선거구에서 1인만 선출하는 소선거구제 대신 넓은 권역에서 2∼4명 등 다수를 선출하는 제도)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가정해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민주당 의석수(현재 129석)는 77석에 그칠 수 있다고 분석됐다. 의석수가 줄어들 게 뻔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선거제도 개편을 전면에 나서 추진하기 어려운 이유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3일 “현실적으로 (의원들 반발 때문에)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결국 2015년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거대 정당의 의지가 관건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논의는 이전보다 무르익었다고 본다. 한국당도 완강한 반대 입장에서 물러서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여당인 민주당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거대 정당이 인식을 바꾸는 것이 하나의 관건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 여론”이라면서 “내가 던진 한 표가 공정하게 반영돼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심희정 김성훈 기자 simcity@kmib.co.kr
노회찬의 못다 이룬 꿈 ‘연동형 비례대표제’ 이번에는 도입될까
입력 2018-08-05 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