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사고 값을 치르는 방식에 대대적인 바람이 불고 있다. 신용카드에서 ‘모바일 현금카드’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이어 한국은행도 적극적으로 변화를 꾀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촉발된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불똥’이 소비자의 결제 패턴 전환으로 옮겨붙었다.
한국은행과 금융기관·유관기관 등 28곳이 소속된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는 31일 “은행 예금계좌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직불서비스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협의회 의장은 윤면식 한은 부총재다. 사무국 역할을 하는 한은 금융결제국은 은행권 모바일 직불서비스와 관련한 기술표준을 개발하고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 중에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은행권 모바일 직불서비스는 QR코드(격자무늬 바코드)를 통한 모바일 기기 간 통신(앱 투 앱)을 기반으로 한다. 소비자가 스마트폰 앱으로 상점에 부착된 QR코드를 찍은 뒤 결제금액과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소비자의 은행 계좌에서 상점 주인의 계좌로 돈이 이체된다. 서울시가 연내 도입을 추진 중인 결제 서비스 ‘서울페이’와 같은 방식이다. 협의회 측은 “정부 및 일부 지자체가 추진하는 ‘소상공인 페이(제로 페이)’ 인프라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모바일 직불서비스를 통한 은행 송금수수료는 은행권과 가맹점의 자율 협약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협의회 관계자는 “은행 계좌를 통한 직불형 지급서비스의 수수료는 현재 가맹점의 현금카드 수수료(0.3∼1.0%) 범위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며 “결제 과정에서 중계·대행이 축소되는 만큼 현재 신용카드 수수료보다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협의회는 신용카드에 편중된 소비자의 결제 행태를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비 방식에서 신용카드 비중이 너무 높다는 판단이다. 지난해 국내 민간소비의 75.4%는 신용카드로 이뤄졌다. 금액 기준으로 지난해 신용카드의 이용 비중(80.4%)은 체크카드(19.5%)나 선불카드(0.1%)를 한참 앞질렀다. 협의회 관계자는 “현재 지급결제 시장은 신용카드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 형태”라며 “소비자가 결제 수단을 자유롭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금융 당국은 ‘신용카드 의무수납제’ 폐지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의무수납제는 카드 가맹점이 소비자의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예전에 비해 많은 결제 수단이 생겨난 상황이라 꼭 결제에 신용카드가 필요한 건 아니다”며 “결제 시장에 경쟁체제가 도입되는 게 금융시장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는 QR코드를 이용해 판매자와 소비자 간 결제대금 이체를 돕는 각종 ‘페이’ 서비스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한은까지 나서서 결제 시장을 바꾸려는 배경에는 신용카드 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하면서 각종 수수료가 붙는 고비용 시스템이 구축됐고, 이 비용이 모두 가맹점에 전가돼 현재 수수료 논란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알리페이나 위쳇페이, 인도의 페이티엠(PayTM) 등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모바일 결제서비스를 국내에 활성화해야 한다는 다급함도 있다.
양민철 나성원 기자 listen@kmib.co.kr
은행계좌서 바로 결제… ‘모바일 현금카드’ 활성화된다
입력 2018-08-01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