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대응하는 ‘인도·태평양(indo-pacific) 경제비전’을 선언했다. 미국은 인도양과 태평양 연안 지역의 신기술과 자원, 사회기반시설 등 분야에 1억1300만 달러(약 1264억원)를 초기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무역 불균형 문제를 중심으로 벌어지던 미·중 양국의 패권경쟁이 인도양에서의 세력 싸움으로 번질 기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30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비즈니스포럼 기조연설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따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도 다른 아시아 국가들처럼 제국과 싸워 독립을 이뤄낸 나라”라면서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을 지배하려 들지 않을 것이며 지배를 시도하는 국가들과 맞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초기 투자금 1억1300만 달러 중 5000만 달러는 자원 개발과 사회기반시설 건설, 2500만 달러는 미국의 기술 수출에 쓰일 예정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번 투자는)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는 계약금일 뿐”이라며 추가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시사했다. 미국은 또 인도·태평양 지역 투자를 위해 호주, 일본과 함께 3자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미국 관리들은 이번 발표 내용이 중국의 일대일로와 직접 경쟁하려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 등을 미뤄보면 태평양과 인도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확보하겠다는 의도가 드러난다. 중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의 도로와 항만 등 사회기반시설 투자를 통한 해외 무역거점과 군사기지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의 공격적인 투자 의도는 채무국을 경제 종속국으로 삼으려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브라이언 훅 미 국무부 선임정책기획관은 전화 브리핑에서 “미국은 일대일로를 ‘중국이 만든 정책(made in China)’일 뿐만 아니라 ‘중국의 이익을 위한 정책(made for China)’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일대일로 견제 전략치고는 투자 규모가 너무 작다고 지적한다. 알리사 에이레스 미국외교협회(CFR) 남아시아담당 선임연구원은 CNN 기고문에서 “중국은 파키스탄 투자사업 한 건에만 620억 달러(약 69조원)를 투자키로 했다”면서 “1억1300만 달러로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투자 수요를 충족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투자 규모는 총 1조 달러(약 112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의 올해 상반기 일대일로 사업 관련 대외 직접투자액은 76억8000만 달러(8조58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미, 인도·태평양 비전 선포, 중국 일대일로에 맞서다
입력 2018-08-01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