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방위 로비에 사찰까지… ‘정치 사법부’ 민낯 아닌가

입력 2018-08-01 04:04
법원행정처가 31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된 문건 196건을 공개했다. 지난 5월까지 활동한 자체 특별조사단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의 컴퓨터에서 확보한 문서파일 가운데 추린 410건 중 공개하지 않았던 문건들이다. 법원행정처는 의혹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으나 검찰 수사과정에서 구체적인 사법 농단 정황이 속속 불거지고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최근 공개를 요구하자 마지못해 응한 것이다.

추가 공개된 문건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를 목적으로 청와대나 국회 등을 상대로 로비를 펼치고 특정 언론을 활용한 정황들이 담겨 있다. 특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등의 동향을 파악하고 하급 법원에 특정 재판과 관련해 지침을 내려 보냈다고 의심할 만한 내용도 들어 있다. 대법원이 ‘재판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엘리트 법관들이 모여 있다는 법원행정처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조직적으로 벌어졌을 수 있다는 사실 앞에 말문이 막힌다. 특별조사단장을 맡았던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얼마 전 국회에서 “재판거래를 인정할 만한 자료와 사정,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지만 발언의 진의가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

사법부는 법치의 마지막 보루다. 법관들이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을 해야 한다. 그래야 사법 정의와 질서를 세우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재판 거래는 사법부에 대한 이런 기대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중대 범죄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진상을 낱낱이 규명해 관련자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철저한 반성이 전제돼야 공정한 재판을 담보해 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사법개혁도 성공할 수 있다. 사법부는 이번 사태를 어두운 과거와 절연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공언했는데도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법원은 사법 농단 의혹의 정점에 있는 핵심 인물의 자택과 사무실,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인사심의관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번번이 기각했다. 자료 제출에도 비협조적이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컴퓨터 하드디스크 일부 자료만 임의제출하고 사법정책실·사법지원실 등의 자료 제출은 거부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사법부 독립을 해칠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얼토당토않다. 대법원 자체 조사에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만큼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게 마땅하다. 그렇지 않다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특별재판부 구성과 국정조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