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공정경제, 대기업 몰아세우기에서 ‘넛지’로 차선변경

입력 2018-08-01 04:01

정부의 ‘공정경제’가 사뭇 달라졌다. ‘몰아세우기’에서 ‘넛지’(슬쩍 찌르는 것처럼 부드러운 개입으로 유도하는 방법)로 흐름이 바뀌었다. 지난해 과세당국이 내놓은 세법 개정안은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일감몰아주기 과세강화 등 ‘대기업 옥죄기’에 초점을 맞췄었다. 반면 올해 세법 개정안에선 세제 혜택을 줘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등을 유도하는 방식이 부각되고 있다.

지주회사 세제혜택 강화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30일 발표한 ‘2018년 세법 개정안’에는 지주회사 수입배당금에 익금불산입 혜택을 주는 기존 제도를 개선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제도는 지주회사의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이 높을수록 법인세 혜택을 많이 주는 게 특징이다. 지주회사가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금은 회계처리를 할 때 수익으로 잡히는데, 이 가운데 일부를 과세표준 산출 시 수익에서 빼주는 것이다. 익금불산입 비율이 높을수록 세금 부과대상인 수익이 적어지고 내야 할 세금은 줄어든다.

현재 익금불산입 비율은 3단계(30%, 80%, 100%)로 나눠져 있다. 정부는 이 사이에 90% 구간을 추가했다. 상장한 자회사 지분을 30% 초과∼40% 이하(비상장 자회사의 경우 50% 초과∼80% 이하)로 가진 지주회사는 익금불산입 비율이 80%에서 내년부터 90%로 오른다. 지주회사 입장에선 자회사 지분율을 높이는 유인이 될 수 있다. 지주회사 설립·전환 시 현물로 출자한 주식에 대한 과세특례를 2021년까지 연장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동안 정부는 대기업집단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높이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자회사 경영에 대한 지주회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차원이었다.

세제혜택을 늘리거나 연장해 대기업들을 유도하는 방법은 그간 과세당국이 보여 온 모습과 궤도가 다르다. 문재인정부는 지난해 ‘핀셋 증세’를 통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인상했었다. 지난해 세법 개정안의 경우 일감몰아주기 과세를 강화하고 대주주의 주식 양도소득세를 올리는 등 규제에 무게를 실었었다.

기획재정부 김병규 세제실장은 “지주회사 세제혜택은 공정거래위원회 측과 충분히 상의해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공정경제와 관련된 세법 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김상조 공정위원장과 3차례 회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기재부 관계자는 31일 “회의 자체가 실용성에 초점을 두고 진행됐다. 당분간 세제혜택을 유지해 대기업들이 지주회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개선할 시간을 줘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전했다.

여기에다 정부가 기업들의 ‘기 살리기’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분석도 있다. 올해 들어 산업생산, 고용, 투자 등 각종 지표에서 경기침체 경고음이 울리자 ‘채찍’보다 ‘당근’을 선택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가 대기업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던 공익법인 관련 세법 개정도 사후관리를 일부 강화하는 수준에 그쳤다. 공익법인이 출연 받은 재산범위를 명확화하고 공시대상서류에 회계감사보고서를 추가하는 정도였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