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혜화역에 모여 ‘탈코르셋 운동’을 벌이는 영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가 뜨겁다. 이들은 다이어트, 화장, 콘택트렌즈 등 ‘꾸밈 노동’으로 상징되는 여성 억압적 문화에 반기를 들며 화장하지 않을 권리, 코르셋을 입지 않을 권리를 주장한다.
탈코르셋 운동의 심벌 같은 미술 작품이 마침 국내에 상륙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프랑스 페미니스트 작가 ‘니키 드 생팔전-마즈다 컬렉션’이 그것이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여인 조각을 보자. 수영복 차림의 이 여성은 풍만함을 넘어 뚱뚱함에 가깝지만, 남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는 듯 춤추는 동작이 기쁨으로 넘쳐난다. 허벅지와 팔뚝은 씨름선수처럼 굵다. 그런데도 동작은 날아갈 듯 가볍다. 외부의 시선에 갇혀 자신을 가꾸는 여성은 저리 가라고 외치는 듯하다. 얼마나 신이 나는지 물구나무를 선 여인상도 있다. 바로 니키 드 생팔(1930∼2002)이 1960년대에 선보인 ‘나나’ 시리즈다.
코르셋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진 나나 시리즈가 탄생하기까지 작가에겐 질곡의 시간이 있었다. 몰락한 프랑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작가는 유년 시절 가족과 미국으로 이주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성적 학대에 시달렸고, 그런 트라우마 탓에 첫 결혼에 실패했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미술치료를 한 것이 계기가 돼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30대에 들어서 시작한 ‘사격 회화’는 그녀가 자신을 되찾는 과정에서 불가피했던 통과의례였는지 모른다. 사격 회화는 물감이 담긴 깡통이나 봉지를 다양한 석고 이미지로 덮은 뒤 거기에 실제로 총을 쏘는 퍼포먼스의 결과물이다. 이 사격 회화로 60년대 초 그녀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붉은 마녀’를 보자.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마녀의 상반신 중앙에 성모 마리아상이 있고 허벅지 부분에 아기의 오브제가 있는데, 그것이 깨지고 물감은 덕지덕지 흘러내려 사회가 강요하는 ‘성스러운 어머니’ 이데올로기에 총구를 겨눈 듯하다.
이후 조각가 장 팅겔리와 새로 사랑을 나누게 되고 지인들과 우정을 나누며 그녀의 작품 세계는 긍정적으로 변모한다. 임신한 친구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나나 시리즈의 탄생이다. 여인의 풍만함은 곧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성에 대한 찬미인 셈이다.
팅겔리와 교감하며 발전한 조각의 세계, 일본인 컬렉터 마즈다와 우정을 쌓으며 탄생한 부처 조각, 공공미술인 타로공원 모형 등 그녀의 삶과 예술세계의 궤적을 보여주는 127점이 나왔다. 탈코르셋에 공감하는 페미니스트라면 더 놓치기 아까운 전시. 9월 25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코르셋을 벗자… 세상 모든 ‘나나’를 위한 응원
입력 2018-08-04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