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노후자금 635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논란이 됐던 ‘경영참여’(기업 임원 선임·해임 요구 등)와 관련된 주주권 행사는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시민단체·노동계의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배당 확대, 재벌 총수의 전횡 견제 등 국내 기업문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다만 ‘연금 사회주의’ 우려를 말끔하게 해소하지 못했다. 당장 국민연금의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어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기금운용위 결정에 따라 경영참여를 할 수 있도록 열어둔 것도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는 30일 회의를 열고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심의·의결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가가 ‘집사(steward)’처럼 투자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는 제도다.
국민연금은 우선 올해 하반기부터 기업의 배당 정책에 적극 관여할 계획이다. 더 많은 기업에 배당을 합리적으로 늘려 달라는 요구를 하기로 했다. 연 4∼5개 기업에서 연 8∼10개로 늘린다. 내년에는 횡령·배임 등의 행위들을 중점관리 사안으로 정하고 해당 기업과 비공개 대화를 진행한다. 1년 후에도 개선이 안 되면 기금운용위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기업명 공개 등의 조치를 취한다.
국민연금의 경영참여와 관련된 활동은 기금운용위 의결에 따라 제한적으로 시행한다. 기금운용위원장인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기업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등 이례적 경우에만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할 것”이라며 “주관적 판단일 수밖에 없지만 기금운용위 전체의 심도 있는 토론을 거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영참여 여부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임원 선임·해임 또는 직무 정지, 정관변경을 위한 주주제안 등은 경영참여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은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지던 지난 6월 대한항공에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경영진 일가의 일탈에 대한 사실관계 및 해결방안, 대한항공 입장을 물었다. 이런 활동은 현행법상 경영참여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번 의결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필요한 경우 공개서한 발송 등을 넘어서 임원 선임·해임 주주제안 등을 적극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재계에서 경영간섭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민연금은 이를 감안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설치·운영한다. 민간 전문가 14명이 중요 의결권에 대한 찬반 결정 등에 대한 승인 및 점검 업무를 한다. 정부 인사는 배제됐다. 의결권 행사 사안에 대한 사전공시 문제도 경영계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 원칙적으로 전부 공개하는 것에서 수탁자책임위 결정을 통해 공개하는 것으로 축소했다.
그러나 재계는 여전히 우려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국민연금의 경영참여는 개별 기업의 경영활동에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시장을 교란시키는 일이 없도록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탁자책임위도 복지부 기금운용위 산하 기구라는 점에서 ‘정부 입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평가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본적으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경영참여를 허용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나성원 권중혁 기자 naa@kmib.co.kr
국민연금 제한적 경영참여… ‘연금 사회주의’ 우려 걸림돌
입력 2018-07-30 18:32 수정 2018-07-30 2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