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백인 정부의 인종차별과 맞서 싸우면서도 복수심을 불태우지 않았던 인물이다. 정치가가 자신이 받은 핍박에 복수하지 않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는 20년 넘게 옥살이를 했다. 하지만 고난을 되갚기보다 자신이 받은 소명을 신실히 지켜가는 일에 헌신했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 1년 후인 1995년의 일이다. 럭비월드컵이 남아공에서 열렸다. 그런데 흑인들은 대표선수가 모두 백인이라는 이유로 응원을 거부했다. 그때 만델라는 직접 선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나와 대표팀을 응원했다. 흑인들의 피해자 의식에서 비롯된 또 다른 형태의 인종차별을 무너뜨리려는 의도였다. 그 모습을 보고 국민은 모두 한목소리로 백인들로 구성된 대표팀을 응원했다. 소명에 충실하기 위해 눈치를 보지 않은 지도자의 용기 있는 행동에 모든 국민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만델라처럼 역사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켰던 사람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옳은 일을 발견한 것이고, 둘째는 그 일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그 일을 행한 것이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발견하는 것이 소명(Calling)이라면 그 소명을 이루기 위해 담대히 앞으로 나아가며 희생하는 것은 용기(Courage)다.
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은 소명과 상관없이 살았기 때문이다. 소명을 따라 살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느라 인생을 소모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소명은 지문과 같다. 소명을 따라 살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가식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다른 사람을 무조건 기쁘게 해야 할 의무는 없다.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그들을 가식 없이 사랑할 자유가 있을 뿐이다.
소명을 따라 살지 않는 사람은 너무 많은 일을 이루려 하다가 시간에 속박된 인생을 산다. 주어진 시간에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가능한 한 많은 일을 이루어내겠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힌다. 소명은 나이 들지 않는다.
발견한 소명을 용기 있게 추구하지 못할 때도 인생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용기가 없으면 소명을 버리고 사람이나 상황에 이끌린다. 소명에 따라 살려면 때로 다른 것을 내려놓고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종교철학자 폴 틸리히는 ‘존재의 용기(The Courage to be)’에서 “진정한 용기란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용기”라고 했다. 그러나 성경적 표현은 아니다. 성경적으로 진정한 용기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따라 가는 용기이다.
몇몇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는 정보를 알렸을 때다. 예수님은 오히려 더 담대하게 자신의 소명을 여우 같은 헤롯에게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눅 13:32∼33)
예수님은 시간과 상황에 이끌려 가는 분이 아니라 시간의 주인이며 모든 상황의 주인이심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이루기 위해 어떤 고난과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용기를 보여주셨다.
자신의 위치와 대중의 인기, 때로 자신의 생명도 내려놓을 수 있는 소명을 발견했는가.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그 소명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바로 그 소명을 발견한 사람만이 인생을 의미 있게 살 수 있다.
소명을 따라갈 때 고난 앞에 무너지기보다는 유혹에 넘어질 때가 많다. 예수님께도 유혹이 고난보다 먼저 왔다. 예수님께서 유혹에 넘어지셨다면 고난은 받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소명을 발견하고도 예수님을 넘어뜨리려 했던 광야의 세 가지 유혹 앞에 무너질 때가 많다. 권력 편안함 명예라는 유혹이다. 우리 앞에 소명을 위협하는 고난이 오지 않는 것은 이미 유혹 앞에 소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고난에 앞서 먼저 소명을 잊게 하는 유혹을 이겨야 한다. 그러고 나면 때로 고난이 올 것이다. 만일 고난 앞에서도 담대한 용기로 소명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에 쓰임을 받을 것이다.
이재훈(온누리교회 담임목사)
[시온의 소리] 소명과 용기
입력 2018-07-31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