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옛 실크로드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를 밀어붙이고 있지만 파열음이 그치지 않는다. 중국의 장밋빛 계획에 환호했던 이 일대 국가들이 서서히 빚더미에 올라앉으면서 한계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실크로드 일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지역 국가 68개국을 사업 파트너로 삼은 중국의 일대일로는 2차 대전 후 서유럽 재건을 위한 미국의 마셜플랜과 닮았다. 육로와 항로를 이중으로 연결해 연간 1500억 달러를 지원하는 광대역 경제 구상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동남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갈등이 커지고 있다. 최근 총선이 한창이던 말레이시아는 중국이 지원하는 220억 달러 규모의 4개 프로젝트 가운데 3개의 중단을 결정했다. 동부해안철도(ECRL)와 2개의 파이프라인 건설 사업으로 중국 국영기업으로부터 받은 융자가 국영펀드에 유용됐을 가능성과 함께 과도한 비용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의 경우 620억 달러 규모의 합작사업 가운데 라호르에서 벌이는 경전철(오렌지 라인) 사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위기에 몰려 있다.
2015년부터 20억 달러를 투입해 최근 시험운행에 들어간 경전철 사업은 중국이 세계에 선보일 일대일로의 상징적 프로젝트로 자랑해왔다. 그러나 최근 공적자금이 투입돼야 운행이 가능할 정도로 빚더미에 올라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는 오는 9월 구제금융 신청이 현실화되면 중국 입장에서는 난감한 처지에 빠질 수 있다. 미국이 IMF를 좌지우지하는 현실에서 구제금융 조건으로 사업축소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스리랑카는 중국에 진 11억2000만 달러의 빚 탕감 조건으로 지난해 12월 함반토타항 운영권을 중국 자오상쥐그룹에 넘겨야 했다. 건설비 대부분을 중국으로부터 대출받아 완공했지만 적자가 이어지면서 대중 부채상환이 이뤄지지 않자 결국 지분 70%를 넘겨줘야 했다.
운영권 양도가 있더라도 군사적 용도로 활용되지 않는다는 계약이지만 인접국 인도와 함께 미국은 점점 경계감을 강화하고 있다.
미얀마의 차우크퓨 항만 사업도 중국의 군사적 목적이 의심되는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중국의 대규모 자금지원으로 이미 라오스 몰디브 몽골 몬테네그로 지부티 등 이 일대 주요 거점 신흥국들은 대규모 부채상환 리스크에 직면한 상태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미국의 싱크탱크 세계개발센터를 인용해 보도했다. 키르기스스탄의 경우 일대일로로 인해 국채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이 62%에서 78%로, 지부티는 82%에서 91%로 치솟을 것으로 추정됐다.
일대일로 파트너 국가들이 빚더미에 앉게 되는 이유는 뭘까.
건설 중인 인프라는 완성 이후 수익을 통해 중국에 부채를 상환해야 하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이에 사업 채산성을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나 이들 국가 대부분은 노하우가 부족하다.
게다가 중국의 이익 우선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일대일로 사업 계약 시 대부분 중국 은행들의 손을 거쳐 대출계약을 해야 한다. 이 때문에 투명성을 보장받기 어려운데다 중국 기업들이 시공책임을 지는 구조로 내몰린다. 결국 중국에 갈수록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빚의 탕감 없이 경제원조로 이뤄진 미국의 마셜플랜과 다른 점이다.
아시아 각국은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당장 풍부한 인프라 개발자금의 공급원이 되는 일대일로 구상 자체를 거부하기는 어려운 편이라고 닛케이는 지적했다. 따라서 최근 강경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말레이시아 등도 중국과의 재검토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은 이처럼 실크로드 일대에서 합작 인프라 건설 사업의 32%나 해당 국가와 갈등에 직면한 것으로 파악하고 대책마련에 나섰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보도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최고인민법원을 통해 선전과 시안지역에 일대일로 사업 분쟁을 담당하는 기구를 설립해 지난 1일부터 운영하고 있다.
이동훈 선임기자 dhlee@kmib.co.kr
실크로드 영광 재현하겠다던 중국의 ‘일대일로’, 곳곳에서 파열음
입력 2018-07-29 18:37 수정 2018-07-29 2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