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은 죄로 어두워진 세상의 소금과 빛이 돼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으로서 세상을 썩지 않도록 할 뿐 아니라 세상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덕분에 세상이 살 만한 곳이 돼야 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물에는 모두 소금이 들어가야 한다. 소금의 목적은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맛을 내도록 하는 데 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 되려면 우리 안에 소금이 있어야 한다.(막 9:50) 예수님은 죄로 어두워진 세상에 오셔서 세상의 빛이 되셨다. 이처럼 우리도 빛이신 예수님을 증언함으로 모든 사람이 빛이신 예수님을 믿게 해야 한다.(요 1:9)
하나님께서 부르신 거룩한 제사장의 직분
중세교회는 일반 성도들이 세상에서 해야 하는 역할을 가볍게 여겼다. 그들은 교회 사제들과 수도사들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부르신 일류 그리스도인으로 보았고 나머지 성도는 이류로 보았다. 그들은 교회의 직분만 존중했고 일반 성도들의 직업은 하찮게 여겼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는 모든 직업을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명의 자리로 봤다. 루터에게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었다. 루터의 이런 혁신적인 관점은 베드로전서 2장 5절을 근거로 삼는다.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무슨 말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모두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루터는 중세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에 맞서 이 말씀을 외쳤다.
우리는 일터로 보냄 받은 제사장이다. 그리스도의 일을 감당하는 대리자들로 이 세상의 모든 영역에 파송됐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보내시든 어떤 분야에서 일하게 하시든 하나님의 통치가 그곳에 이뤄지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 분야가 하나님의 법, 즉 하나님 말씀에 따라 다스려지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의 원칙
그렇다면 무엇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가. 그것은 선한 행실, 즉 희생과 봉사의 삶이다. 사랑과 화평, 인내와 절제, 자비와 긍휼, 의와 진실이라는 성령의 열매다. 이런 열매가 있어야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실 수 있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모든 영역에서 풍성히 맺을 때 세상은 참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그리스도인을 통해 만나게 된다.
세상은 절망과 상실감에 시달리고 있다. 주님은 이 세상을 향해 구원의 기쁜 소식,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희생과 봉사의 헌신이 있어야 이 명령에 순종할 수 있다.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헐벗은 자들을 입히며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로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신다. 우리가 희생과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눌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로마서 15장 7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말씀한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죄 많은 우리를 받아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 주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 줘야 한다. 이렇게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 지고 제자의 길 걸으라
제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제자의 삶은 세상의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지배할 때 가능하다. 제자가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말씀을 통해 나를 지배해야 한다. 그럴 때 그 생명이 내 안에 머물고 나를 통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 개혁주의신학을 아무리 외쳐도 실천할 수 없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없기 때문이다. 제자라면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야 한다.
제자의 삶은 십자가 고난을 짊어지는 삶이다. 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리고 전하는 삶이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로 하여금 그의 고난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게 하신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4∼27)
사도 바울은 이렇게 극심한 고난을 겪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전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7∼8)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일은 우리 힘으로 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를 때 가능하다.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 구하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구호는 단지 머리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철저한 자기 부인과 회개가 먼저 있을 때 성령의 열매를 우리 삶에서 맺을 수 있다. 오늘날은 영웅을 찾아 인간을 높이고 찬양하는 시대다. 이러한 시대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주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아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날, 그의 발 앞에 우리의 면류관을 벗어드릴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영원히 찬양할 것이다.(계 4:10∼11)
우리는 이러한 소망을 품을 때 그리스도를 본받아 희생과 봉사의 삶을 온전히 살 수 있다. 이를 통해 참된 빛,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을 통해 세상에 비출 수 있다. 사나 죽으나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것이 우리 삶의 유일한 목적이다.
장종현 목사 (백석대 총장)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한국교회에 생명력을] 세상은 그리스도인 덕분에 살 만한 곳 돼야
입력 2018-07-30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