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아마추어, 프로 잡는 기적을 낳다…상무 꺾고 16강행 양평 FC

입력 2018-07-27 04:00
순수 국내 아마추어 축구리그인 K3리그 양평FC 선수들이 25일 2018 KEB하나은행 FA컵 32강에서 상주 상무를 승부차기 끝에 제압하는 기적을 창출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K3리그팀이 프로축구 1부리그인 K리그1팀을 이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평FC 제공

프로 앞에서, 프로를 절실히 꿈꾸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뛰었다. 선발 11명 중 절반은 다리에 쥐가 났고, 교체카드를 다 써 빠질 수 없던 선수들은 바늘로 종아리를 찔러 피를 내며 버텼다. 좌절과 아픔을 맛보면서도 축구에 대한 열정을 놓지 못한 이들은 마침내 프로를 잡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순수 아마추어 리그인 K3리그(4부리그)의 양평FC가 25일 2018 KEB하나은행 FA컵 32강전에서 K리그1(1부리그)의 상주 상무에 깜짝 승리를 거뒀다. 선제골을 내준 양평FC는 후반 41분 동점골을 넣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고, 연장전에서도 1골을 내준 뒤 후반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재차 기록했다. 결국 승부차기에서 상주를 4대 2로 꺾었다. K3리그 팀이 1부리그 팀을 잡은 것은 FA컵 역사상 처음이다. 프로구단 입단 문턱에서 탈락하고 내셔널리그(3부리그)에서 뛰다 방출된, 어쩌면 축구계의 패자들이 수놓은 작품이었다.

양평FC의 선수 대부분은 초등학교 때부터 국가대표를 꿈꿨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대학교를 중퇴한 후 프로로 진출하지 못했다. 잠시 프로 생활을 했지만 기회를 잡지 못해 아마추어 리그로 내려온 선수도 있다.

2015년 창단한 양평FC는 빛을 보지 못한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의 장을 제공하고자 한다. 황태건 양평FC 사무국장은 26일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선수들이 실력을 갈고닦아 더 큰물로 갈 수 있는 팀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아마추어 구단이다보니 재정적으로 여유롭진 않다. 선수들도 연봉이 아닌 출전·승리 수당으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지만, 축구를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다.

창단 멤버인 수비수 이정헌(28)은 2013시즌 K리그 챌린지(2부리그)의 수원FC에서 뛴 적이 있지만, 무릎 부상 등으로 기회를 많이 잡지 못하고 양평FC까지 왔다. 이정헌은 “상위 리그로 다시 올라가는 게 목표지만, 일단 눈앞의 상황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이들에게 아마추어와 프로팀이 맞붙는 FA컵은 프로 구단 앞에서 자신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황 사무국장은 “FA컵에 출전할 때면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K3리그 선수들에겐 꿈의 무대”라고 설명했다.

양평FC는 K3리그에서도 화끈한 축구를 펼치기로 유명하다. 강점인 체력과 기동력을 활용해 빠르게 공수를 전환한다. 공격 축구를 추구하는 김경범 양평FC 감독은 선수들에게 전진 패스와 뒷공간 돌파를 주문한다. 득점이 많은 만큼 실점도 적지 않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은 짜릿한 재미를 느낀다. 역동적인 축구로 작은 양평군에 양평FC를 응원하는 팬도 생겼다. 상주 상무와의 경기에는 수십 명의 팬들이 원정 응원을 왔다. 구단에서 운영하는 양평FC 경기 중계 유튜브 채널로 경기를 보는 마니아들도 있다.

양평FC는 한 번의 이변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선수들은 다음 달 8일 1부리그 대구FC와의 FA컵 16강전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아마추어 언더독이 이번에는 어떤 드라마를 쓸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