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0억원 중 일부만 지급, 지급 대상·액수는 산정 중
타 보험업체에도 영향 미칠 듯
전체 생보사 지급액 1조 추산
삼성생명이 4300억원 규모의 즉시연금 미지급액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일괄지급 권고를 사실상 거부했다.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일괄지급은 부적절하다는 판단이다. 향후 법원 판단을 받아본 뒤 결정하겠다고 했다.
대신 4300억원 가운데 가입설계서상 최저보증 이율에 따른 예시 금액은 지급한다. 고객 보호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정확한 지급액 및 고객 수는 아직 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이는 금융감독원의 일괄구제 원칙과 어긋난다. 금감원과 삼성생명 간 갈등이 고조될 전망이다.
삼성생명은 26일 이사회를 열고 ‘즉시연금 미지급액의 일괄지급’ 안건을 이같이 수정 의결했다. 이사회는 “법적 쟁점이 크고 지급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이사회의 결정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며 “(일괄지급 여부는) 법원 판단에 따라 결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지난 4월 금감원은 즉시연금과 관련한 분쟁조정 과정에서 민원인 A씨의 손을 들어준 뒤 전 생명보험사들에 “이 결정에 따라 연금액을 지급하라”고 권고했었다. 금감원 결정을 따를 경우 총 지급 규모는 삼성생명이 4300억원(5만5000명), 한화생명이 850억원(2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생보사 지급액은 최대 1조원(16만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삼성생명이 일괄지급을 사실상 거부해 다른 보험사들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즉시연금은 목돈을 한번에 넣고 매달 연금을 받다가 만기 때 원금을 돌려받는 상품이다. 은퇴자나 자산가들에게 인기를 끌었었다. 그런데 연금액을 두고 분쟁이 발생했다.
민원인 A씨는 2012년 9월 삼성생명 즉시연금에 10억원을 가입했다. 약관상 최저보증 이율은 연 2.5%(가입 후 10년 이내)였다. 해당 상품은 10억원에서 사업비 등으로 6000만원 정도를 뗀 뒤 9억4000만원을 운용해 발생하는 이자를 연금으로 준다. 이자 중 일부는 만기보험금 지급재원 명목으로 떼고 준다. 사업비로 미리 뗐던 6000만원을 채워넣기 위해서다. 9억4000만원에 최저보증 이율을 적용하면 매달 196만원 정도가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처음 3년은 매달 250만∼305만원이 들어왔지만 2015년 10월부터 매달 136만∼184만원이 들어왔다.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떼다보니 연금액이 줄어든 것이다.
금감원은 보험사 측 약관이 문제라고 봤다. 약관에는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뗀다는 내용이 명확히 없었다. 금감원은 떼어간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까지 돌려줘야 한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최저보증 이율로 예시된 금액까지는 보장해주겠지만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 부분은 법원 판단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A씨 사례의 경우 실제 받았던 연금액과 196만원의 차액만 주겠다는 것이다.
보험업계는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떼는 건 보험의 기본 원리라 약관이 명확하지 않다고 해서 돌려주라는 건 지나치다고 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 돈도 보험사가 부담하라는 건 보험을 은행 예금처럼 운영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괄구제의 법적 근거도 부족해 배임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삼성생명, 즉시연금 일괄지급 거부… “법적 판단 받겠다”
입력 2018-07-27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