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軍 ‘하극상’ 연출… “기무사 개혁 미룰 수 없다” 절감

입력 2018-07-26 18:06 수정 2018-07-26 21:35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한 소강원 국군기무사령부 참모장이 26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조사를 받기 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소 참모장은 기무사의 계엄 문건 작성 태스크포스(TF)를 이끌었다. 최종학 선임기자

장관 리더십 타격 입으면 안보 불안 우려까지 제기
송영무 잘잘못도 따질 듯… 소강원 피의자 신분 소환 합동수사단 수사 박차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 검토 문건에 대해 철저한 진상 규명을 지시한 이유는 기무사 개혁의 시급성을 절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욱이 국방부 장관의 영(令)이 서지 않는 장면까지 연출되며 군 지휘체계마저 위태롭다는 우려가 높아진 상황이다. 계엄 실행 여부와 작성 경위에 초점이 맞춰지기보다는 각종 의혹만 키운 이번 사태를 조기 수습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기무사 문건 파문이 국민적 혼란을 초래한 데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또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거론하며 “잘잘못을 따져보아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국방개혁 차원에서 기무사를 뜯어고치려던 송 장관을 엄호하던 여권의 기류가 바뀐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송 장관 책임론은 지난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송 장관이 기무사 장교들과 볼썽사나운 설전을 벌인 장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특히 기무사령관에다 대령 계급의 기무부대장까지 가세해 작심한 듯 송 장관을 몰아붙이는 모습은 하극상으로 비쳤다. 송 장관 리더십이 상당한 타격을 입으며 안보 불안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군 통수권자인 문 대통령이 간과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비화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송 장관이 계엄 검토 문건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의혹은 더욱 커졌다. 문 대통령은 군·검 합동수사단의 철저한 수사를 최우선 과제로 언급했다. 송 장관이 지난 3월 16일 문건을 보고받고도 4개월간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은 데 대한 수사가 불가피해졌다.

지지부진한 기무사 개혁의 속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고강도 개혁을 추진하려는 송 장관과 조직 보호에 나선 기무사 간 입장차에다 문건 파문까지 겹쳐 기무사 개혁 논의는 진전되지 못하는 상태였다. 국방부 기무사 개혁위원회는 지난 5월 출범해 10여 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여권에선 기무사 개혁이 국정원과 검찰, 경찰의 적폐청산 속도에 비해 상당히 더디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기무사 개혁 필요성을 강조한 데 대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갈등의 양상들을 보고 그런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번 문건 파장이 장기화할 경우 국정 동력마저 약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야권은 송 장관 경질을 주장하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송 장관은 대한민국 국군을 통솔할 자격과 역량이 (갖춰지기는) 어렵다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군 합동수사단은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국방부 특별수사단은 오후 계엄 관련 문건 작성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이끌었던 소강원 기무사 참모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오전엔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등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해 경기도 과천의 기무사령부와 기무사 예하부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문건 작성 지시자로 지목된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을 최근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출국금지 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이번 사태 수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국방부 감사관들을 기무사령부뿐 아니라 송 장관과 설전을 벌였던 민병삼 100기무부대장 사무실 등에 보내 계엄 검토 문건과 관련한 조사를 진행했다. 또 소 참모장과 계엄 관련 ‘대비계획 세부자료’ 작성 책임자인 기우진 5처장을 직무에서 배제키로 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