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이태원 살인사건’ 부실수사 인정… 국가 배상 판결

입력 2018-07-27 04:03
피해자 고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씨가 지난해 1월 25일 아더 존 패터슨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뒤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법원이 26일 ‘이태원 살인사건’의 초기 수사가 부실했다며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고(故) 조중필(당시 22세)씨가 이태원 버거킹 화장실에서 칼에 찔려 숨진 지 21년 만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부장판사 오상용)는 유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조씨 부모에게 각 1억5000만원, 누나 3명에게는 각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을 단죄하는 데는 20년이 걸렸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4월 3일에 발생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월 25일 존 아서 패터슨에게 징역 20년의 형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오랜 기간 유족들은 헤아릴 수 없는 큰 고통을 겪었다”고 언급했다.

당초 경찰과 미군 범죄수사대는 패터슨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검찰은 에드워드 리를 진범으로 판단해 재판에 넘겼다. 결국 1998년 대법원은 증거불충분으로 리를 풀어줬고, 유족은 패터슨을 다시 고발했다. 그러나 1999년 패터슨은 검사 실수로 출국금지가 풀린 틈을 타 미국으로 도주했다. 이후 사건은 답보상태였다. 2009년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하고 한 언론에서 패터슨의 소재를 보도하자 재수사 여론이 들끓었다. 미국과 수사공조를 벌여 2015년에야 패터슨이 한국으로 송환됐다.

대법원이 형을 확정하자 유족들은 소송을 냈다. 앞서 2006년에도 검사가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은 것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인정된 배상액은 3400만원이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의 잘못으로 실체적 진실이 규명되지 못했다”며 “유족들은 시민사회와 언론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그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집을 파는 등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당시 수사에 대해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경험칙상 긍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러한 수사기관의 행위는 유족들의 인격적 법익(法益)을 침해했다”고 봤다. 2006년에 이미 한 차례 국가배상을 받아 지급의무가 없다는 국가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동일한 살인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유족들이 주장하는 수사기관의 위법행위의 내용과 시기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또 “패터슨에 대한 형 확정 전까지 유족들이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하는 데 객관적인 장애사유가 있었다”며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