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 이곳에도 임하소서”

입력 2018-07-27 00:01
작은빛선교회 차인숙 목사(가운데)와 멘토들이 지난 20일 대구 북구 읍내정보통신학교(대구소년원)를 찾아 치킨을 앞에 두고 수감 청소년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국민일보 취재진과 멘토들에게 휴대전화 지참 금지 등 면회 요령을 설명하는 소년원 관계자.
낮 12시 정각, 육중한 철문이 열렸다. 까까머리에 노란 반팔 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건장한 청소년들이 면회소 안으로 줄지어 들어왔다. 셋 중 한 명꼴로 팔과 다리에 검푸른 문신이 뒤덮여 있다. 눈빛도 날카롭다. 휘발유를 끼얹은 것 같은 분위기. 누군가 밀치거나 해서 불꽃이 튄다면 곧장 활활 타오를 듯한 긴장감이 흘렀다.

폭염 경보가 발령된 지난 20일 대구 북구 읍내정보통신학교를 찾았다. 탈옥을 막기 위한 쇠창살과 둥글게 말려진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곳. 이곳의 다른 이름은 대구소년원이다. 성인들의 교도소를 흔히 ‘학교’란 은어로 부르는데, 소년원은 정식 명칭이 학교다. 원장은 교장이고 보호직 공무원은 선생님으로 불린다.

폭력 절도 성범죄 등 중범죄로 인해 6개월 혹은 2년의 사회격리 처분을 받은 만 19세 미만 청소년들이 대구소년원에 온다. 처분 후 만 22세까지 이곳에 머문다. 소년원 관계자는 “법원에서 더 이상은 훈방을 하지 못해 구금을 결정한 이들로 범죄 입건 경력이 평균 15회 정도는 된다”며 “자기들끼리는 확률적으로 서울대 가기보다 더 어렵다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어디서든 눈에 띄라고 노란 수의를 입힌 청소년들이 작은빛선교회 멘토들 건너편에 앉았다. 치킨 반 마리와 음료수가 나눠졌다. 짜장면이나 짬뽕도 한 그릇씩 올라왔다. 아이들이 경계심을 조금 풀고 젓가락을 옮긴다. 멘토들은 먹지 않고 그저 아이들이 먹는 걸 지켜본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멘토링 시간은 딱 30분.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같이 웃고 기도해 주기도 빠듯해 멘토는 먹을 수 없는 것이다.

키 185㎝에 넓은 어깨와 터질 듯한 이두박근의 준호(가명·20)에게 작은빛선교회 차인숙(58) 목사가 다가가 등을 두드렸다. 폭행 감금폭행 보호관찰법위반 전력이 있는 준호는 이번엔 술을 마시고 오토바이를 몰다 사고를 내 6개월 처분을 받았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그는 중학교만 마치고 오토바이로 야간 택배를 해왔다.

준호는 주일 오후 1시 소년원 안에서 드리는 차 목사와 선교회의 예배에 참석한 걸 계기로 멘토링을 받게 됐다. 그는 “어릴 적 교회 주일학교에 다녀봐서 예배에 나오게 됐다”며 “4명이 함께 쓰는 방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예배에 참석하면 간식도 나오고 해서 좋다”고 말했다. 준호는 단무지로 짜장면 그릇에 남은 짜장까지 남기지 않고 닦아서 먹었다. 준호는 특별히 위협하려는 의도는 없이 악력으로 음료수 캔을 납작하게 만들면서 말을 이었다. “나가면 여자친구와 해운대에 가고 싶어요.”

벨이 울리고 멘토링이 끝났다. 아이들은 일제히 일어나 자신들이 나온 철문 안으로 사라졌다. 짜장면을 먹고 다시 수감시설로 들어가는 아이들 뒷모습에선 30분 전 긴장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저 아이들이었다. 차 목사는 “엄마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일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여기 아이들은 대부분 엄마나 아빠 중 하나가 없거나 둘 다 없다. 이혼 별거 실업 폭력 등 다양한 이유로 가정이 붕괴되고 가족이 해체됐다. 차 목사는 “가해자이기 이전에 가정 해체의 피해자인 어린 원생들”이라며 “하나님의 눈물 사랑 관심이 여기에 없었다면 이들을 돌보는 기적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 군경교정선교부가 발간한 책 ‘담 안에 갇힌 또 다른 이웃’의 맨 앞머리에 ‘하나님의 눈물 사랑 관심이 여기에’란 글을 썼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설교는 무엇일까. 차 목사는 “창세기 37장부터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라고 답했다. 형들의 미움으로 팔려간 요셉. 만 17세 히브리 소년이 온갖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 끝에 이집트 총리가 되는 스토리. 차 목사는 “우리 원생들이 요셉과 같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말했다.

15명 멘토는 아이들이 떠난 면회소 자리를 뒷정리했다. 한 멘토는 “남겨진 포장지와 음료수캔 분리수거까지 오롯이 섬겨야 한다”고 말했다. 영어교사 농장운영 등 멘토들의 직업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 크리스천이었다.

대구=글·사진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