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주 따라 뛴 배추·무값… 하반기 밥상물가 심상찮다

입력 2018-07-25 04:04


낮 기온이 37도까지 오른 24일 오후 1시쯤, 서울 관악신사시장의 한 채소가게에선 배추를 포기당 6000원에 팔고 있었다. 불과 2주 전에 3000원이었던 배추 값은 배가 뛰었다. 가게 주인은 이 배추를 영등포청과시장에서 포기당 4500∼5000원에 떼어왔다. 도매가격이 많이 올라 소매가격도 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게 주인 마모(58·여)씨는 “상추, 부추, 깻잎 등 잎채소는 안 오른 게 없다”며 “진열을 해도 금방 시들어 버려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2주째 이어진 기록적 폭염이 ‘밥상 물가’에 비상을 걸었다. 더위에 약한 배추·무 등 채소 가격은 직격탄을 맞았다. 다음 달 중순까지 폭염이 이어지면 농산물 가격 급등세는 과일과 축산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순까지 배추와 무 가격은 평년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달 중순부터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공급 불안정 상황이 부각됐다. 배추 도매가격은 지난달 하순 포기당 1561원에서 이달 중순 2652원으로 급등했다. 평년 가격보다 27.9%가 높다.

무도 같은 기간 개당 1143원에서 1450원으로 올랐다. 이날 관악신사시장의 또 다른 가게에선 어른 팔뚝만한 무를 개당 2000원에 팔고 있었다. 2주 전 가격은 1500원이었다. 이모(63·여)씨는 “시장에서 일한 지 5년 됐는데 이렇게 더운 건 처음”이라며 “도매시장에도 채소 물량이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폭염에 따른 농축산물 가격 불안은 ‘여름철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15년까지 폭염이 가장 오래 지속됐던 상위 5개 연도(1990년, 1994년, 1996년, 2004년, 2013년)의 7∼8월 평균 물가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5.6%에 달했다. 나머지 연도의 평균(3.5%)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률이 10.4%로 다른 연도의 평균(3.7%)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식료품, 교통, 숙박 부문의 물가도 크게 올랐었다.

더 큰 문제는 물가 급등세가 추석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2016년의 경우 폭염과 가뭄 영향으로 배추 가격이 추석연휴를 앞두고 포기당 1만원까지 치솟았었다. 폭염에 따른 축산물 폐사가 늘어나면 추석 상차림 비용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축산물 가격이 폭등할 수 있다. 폭염이 장기화됐던 5개 연도에 추석 기간의 축산물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물가상승률보다 2.5% 포인트나 높았었다.

여기에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가 1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밥상물가가 상승 흐름을 타면 소비자들이 지갑을 더 닫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국제유가가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에 고공행진을 하고 있어 이미 물가 상승 압력은 높아진 상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지구온난화 등 영향으로 이상고온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정부의 선제적 대응책을 주문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좀 더 저렴한 폭염 대비 기술이 도입될 수 있도록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하다”며 “축산조합에 시설 지원을 확대하고, 농축산물이 상온에 오래 노출되지 않도록 현대화된 유통시설을 도입하는 데에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