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북구 빛고을광염교회(박이삭 목사) 성도들은 여름휴가철이면 주머니에 10만원이 든 휴가비 봉투를 넣고 다닌다. 자신을 위한 휴가비가 아니라 지역 내 폐지 줍는 어르신을 위한 것이다. 일명 ‘폐지 줍는 어르신을 위한 휴가비 전달 프로젝트’. 지난해 충북 청주에서 폐지를 줍던 할머니가 열사병으로 숨졌다는 보도를 접한 박이삭(43) 목사가 성도들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서 나온 아이디어다.
“하루 종일 폐지를 모으며 손에 쥐는 일당이 5000∼6000원이더군요. TV에선 연일 ‘폭염경보’라며 야외활동을 자제하라고 하는데 폐지 모아 하루를 살아가는 어르신들에겐 다른 세상 얘기죠. 그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7일의 유상휴가를 선물하려면 3만5000원이 필요한데 여기에 약간의 휴가비를 보태 10만원을 드리기로 한 겁니다. 성도들에겐 우리가 폐지 줍는 어르신들 휴가 보내드리는 고물상 사장님이 돼 보자고 했죠.”
수화기 너머로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박 목사의 목소리엔 이웃 어르신을 향한 안타까움과 애정이 배어 있었다. 프로젝트 방식은 간단하다. 성도들이 거리에서 폐지 줍는 어르신을 마주치면 시원한 음료수 하나와 휴가비 봉투를 전달한다. 휴가비 전달의 의미를 소개하고 휴대전화로 ‘인증샷’을 남긴 뒤 교회에 제출하면 교회 재정부에서 미리 전달한 휴가비를 정산해준다.
한 성도는 난청 때문에 잘 듣지 못하는 할아버지께 휴가비를 드리려다 뜻하지 않게 추격전을 벌였고 다른 성도는 건물 계단에서 폐지를 모으던 할머니께 휴가비를 드리려다 함께 눈물이 터져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고 한다. 휴가비와 함께 직접 쓴 ‘손편지’를 드린 성도, 아들과 함께 손수레를 밀어드리며 휴가비와 성경책을 드린 성도도 있었다. 박 목사가 보내 준 사진엔 ‘시원한 휴가 보내세요’란 문구가 적힌 봉투와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어르신과 성도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박 목사는 “개척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작은 교회이지만 성도들 스스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를 쉬게 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다”면서 “올여름엔 휴가비를 받는 어르신들이 지난해보다 두 배 많아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휴가비 전달 프로젝트’와 함께 시작된 ‘냉장고 채워주기 프로젝트’는 매달 진행된다. 지역 내 어린 자녀를 둔 저소득 가정을 위해 성도들이 직접 장을 본 뒤 정기적으로 찾아가 냉장고에 넣어준다. 박 목사는 “쌀이나 생필품은 정부, 기관에서 어느 정도 지원하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자녀에게 평소 사주지 못하는 소고기, 제철과일 등을 장보기 품목으로 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교회가 희망의 씨를 뿌리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그 열매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게 하나님의 지상명령”이라고 덧붙였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폭염 속 폐지 줍는 어르신들에게 휴가비 드려요
입력 2018-07-25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