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의 기적] “하루 종일 일하고 동생과 하루 한 끼만 먹어요”

입력 2018-07-25 00:00
마틸다는 동생 자넷과 함께 축사 흙바닥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잠을 잔다. 이들은 어미 닭 3마리와 같이 생활한다. 기탕가(부룬디)= 윤성호 기자
미궁가초등학교에서 성적이 상위권에 속하지만 마틸다는 가정형편상 중학교 진학은 꿈도 못 꾸고 있다. 기탕가(부룬디)= 윤성호 기자
마르테 음뱅게 부룬디 월드비전 내셔널 디렉터는 "한국은 부룬디 월드비전을 돕는 6개 주요 국가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부줌부라(부룬디)=윤성호 기자
아프리카 적도 부근에 위치한 부룬디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40달러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국토 3분의 1 크기에 1146만여명이 거주한다. 1993년부터 13년간 후투족과 투치족의 민족분쟁으로 최소 3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기탕가는 부룬디의 수도 부줌부라에서 동남쪽으로 151㎞ 떨어진 산악지대로 밭농사를 주로 한다. 마틸다(13)와 자넷(8) 자매는 지난 1월 에이즈에 걸린 부친이 사망하면서 이곳으로 왔다.

다행히 유일한 혈육인 큰아빠가 축사 한 칸을 거처로 내줬다. 엄마는 2010년 부룬디 내전을 피해 탄자니아 난민촌에 머물고 있을 때 자넷을 낳다가 사망했다.

마틸다의 일과는 오전 6시 시작된다. 주변 냇가에서 물을 긷고 오전 7시30분 산비탈에 있는 미궁가초등학교에 등교한다. 이곳은 6개 학급에 190명이 공부한다. 마틸다의 담임교사인 폰쉐(42)씨는 “마틸다는 초등학교 6학년으로 똑똑하고 책임감이 있어 성적이 상위권”이라면서 “성실한 아이로 다른 아이들에게도 도움을 준다”고 했다.

오후 1시 수업을 마치자 마틸다는 맨발로 1㎞ 자갈길을 따라 집으로 향했다. 방이라고 해 봐야 가로 2m, 세로 2.5m의 흙벽돌 축사다. 안에 들어서니 매캐한 냄새가 났다. 부룬디는 낮과 달리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 마틸다가 사는 방은 밤마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모닥불을 피워 사방에 시꺼먼 검댕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한쪽 모서리엔 어미 닭 3마리가 알을 품고 있었다.

마틸다는 어깨높이까지 오는 곡괭이를 챙겨 인근 밭으로 갔다. 익숙한 동작으로 땅을 파고 곡괭이 등을 활용해 흙덩어리를 부쉈다. 잡초를 손으로 걷어내던 마틸다는 “나와 동생이 살아남으려면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 일하는 게 너무 힘들고 슬프다”고 했다. 그는 “만약 부모님이 살아계셨다면 일하는 시간에 공부할 수 있기 때문에 반에서 1등도 했을 것”이라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한낮에는 30도를 넘나드는 땡볕이 찾아온다. 햇볕을 받으면서 오후 6시까지 일하면 한국 돈으로 300원을 받는다. 돈으로 받지 않을 땐 고구마와 비슷한 카사바 10알을 받는다. 동생과 하루에 한 끼만 먹는데, 카사바 다섯 알을 절구에 찧어 가루를 낸 뒤 주변 냇가에서 떠온 희뿌연 물을 부어 끓여 먹는다.

큰아빠 존 보호레존(59)씨는 “나도 8명의 아이를 키우는데 마틸다와 자넷까지 챙기기엔 역부족”이라면서 “마음으로는 조카들을 돌보고 싶지만 나도 나이가 있어 벅차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불결한 환경에 조카들을 방치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만약 저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이 동시에 배고프거나 아플 때 부모 입장에서 누구한테 신경 쓸 것 같냐”고 반문했다. 그는 “자넷이 지난달 말라리아에 걸렸는데 병원에도 못 가고 싸구려 약을 사서 먹였는데 다행히 나았다”고 했다.

마틸다는 엄마가 그립다고 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요. 탄자니아 난민촌에 갔을 때가 제일 좋았어요. 엄마가 나를 씻겨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잠도 재워주셨어요. 예쁜 옷도 사줬어요.” 마틸다는 고개를 숙인 채 “동생이 부모님 보고 싶다고 보챌 때마다 ‘우리는 인내하고 희망을 가져야 해. 천국에 계신 부모님께서 기도해 주실 거야’라며 달랜다”고 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에게 뭐라고 말해 주겠느냐. 훗날 엄마가 된다면 어떤 엄마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마틸다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와 같은 고아에게 희망을 잃지 않고 인내하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행복한 엄마가 돼 아이들이 아프면 돌봐주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라고 말해 줄 것 같아요.”

마틸다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다. 그는 “아빠가 돈이 없어 에이즈 약을 제대로 못 드셨다”면서 “꼭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80㎞ 떨어진 중학교에 진학하려면 수업료와 기숙사비, 책값을 내야 한다. 슬리퍼 하나 못 사는 형편에 엄두도 못 내는 일이다.

마틸다는 학교 옆에 있는 미궁가오순절교회에 다닌다. 고된 하루를 보낸 마틸다는 흙먼지가 일어나는 땅바닥에 비료 포대를 깔고 누웠다. 허리춤에 묶었던 부룬디 전통 보자기 ‘로인’을 풀어 자넷을 덮어줬다. 그리고 8년 전 엄마가 다정스럽게 안아준 것처럼 동생을 꼭 끌어안고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오늘도 좋은 날을 주시고 안전하게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를 도와주세요. 잠자는 동안에도 안전하게 지켜주세요.”

2011년부터 이 지역에서 구호개발 사업을 전개하는 한국 월드비전은 마틸다를 결연아동으로 선정하고 학용품과 의류를 지원키로 했다.

▒ 2020년까지 280만명에게 깨끗한 물·양질의 식사 제공
부룬디 월드비전의 목표


“부룬디 월드비전의 목표는 2020년까지 280만명의 어린이에게 깨끗한 물과 영양가 있는 식사, 양질의 교육 등을 제공해 삶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이 일에 큰 도움을 주는 한국의 후원자들께 감사드립니다.”

부룬디 수도 부줌부라의 월드비전 본부에서 만난 마르테 음뱅게(48·여) 부룬디 월드비전 내셔널 디렉터는 한국 방문단에 감사의 인사부터 전했다. 세네갈 국적의 음뱅게 디렉터는 239명의 부룬디 월드비전 직원을 진두지휘하며 2017년 기준 2101만 달러(237억6200만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구호기구의 수장이다.

음뱅게 디렉터는 “월드비전은 부룬디 내전이 심했던 1995년 사업을 시작해 2008년부터 내전에 따른 긴급구호 위주로 활동해 왔다”면서 “18개 사업장을 운영하는데 그중 2곳을 한국이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미국 독일 프랑스 홍콩 호주와 함께 부룬디 월드비전의 사업을 돕는 핵심 국가다. 지난해 지역개발사업 예산 중 한국이 7%를 분담했다. 주요 국가의 분담 비율은 미국 39%, 독일 15%다.

그는 “18개 사업장에 5200명의 결연아동이 있는데 사업장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는 추세”라면서 “유엔 세계식량계획(WEP) 유엔개발계획(UNDP) 세계은행 등과 구호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룬디 월드비전은 지난해 8만9000명의 어린이에게 말라리아 치료 기회를 제공했으며 5만8000개의 모기장을 나눠줬다. 10만6300여 가구에 모기 기피제를 보급했다. 7332가구에 농업소득 증대를 위한 도움을, 4754명의 농부에게 농업기술을 전수했다. 1만8283가구에 재정적 도움을 줬다.

한국은 기탕가 및 루타나 지역을 돕는데 주로 어린이를 위한 영양공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음뱅게 디렉터는 “2020년까지 가난과 기아, 비위생적 환경에 놓인 어린이를 돕기 위해 식량, 건강보건, 교육, 인식증진이라는 4대 전략 아래 활용 가능한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면서 “가능하면 한국이 2∼3개 사업장을 더 맡고 삼성과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학교에 컴퓨터를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탕가·부줌부라(부룬디)=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