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무학자(無學者)였다. 여자가 어딜 돌아다니느냐는 외조부의 성화로 한글을 가르치는 야학조차 가 보지 못했다. 한글 이름 '김옥희'만 간신히 쓸 정도였다. 이런 어머니에게 통하는 설교는 무엇일까. 나의 뿌리이자 이웃이고 내가 섬겨야 할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복음을 쉽고 재미있게 전해 줄까. 평생을 고민했다. 결과는 속담 민담 판소리 등 서민들의 말투와 어휘, 이야기를 그대로 살려 전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한국 전통의 콘텐츠로 설교하는 오종윤(59) 군산 대은교회 목사에게 23일 설교 방법론을 물었다.
“쥐가 사위 삼는 여정에 관한 얘기입니다. 쥐가 예쁜 딸을 낳아 애지중지 키웠는데, 이제 멋진 신랑을 찾아주고 싶은 겁니다. 먼저 밝게 빛나는 태양을 찾아갔지요. 그런데 해님은 ‘나는 구름이 덮으면 힘을 못 쓴다’고 합니다. 그래서 찾아간 구름은 바람이 불면 속수무책이라 하고 바람은 벽을 뚫지 못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벽은 자신의 밑단을 쏠곤 하는 쥐가 가장 힘이 센 존재라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총각 쥐랑 결혼을 시키지요.”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이 전래동화를 오 목사는 한신대 재학 시절 민중신학자인 서남동 교수에게 들었다. 오 목사는 “신랑 쥐를 찾는 이 이야기를 통해 무식하다고 얕잡아봤던 시골 사람들, 한글도 모른다고 무시했던 어머니에게 내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반성하며 통렬히 회개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는 신학교 강단의 언어와 목회 현장의 언어가 분리돼 있다는 발견으로 이어졌다. 성서를 지식인의 언어 즉 철학적 논리적 관념적 언어로 전달하면 설교 시간에 졸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특히 논일 밭일을 하다가 교회를 찾은 시골교회에선 더 그랬다. 고된 농사일에 찬송 때부터 졸기 시작하는 성도도 있다. 설교가 어려우면 100% 필패다. 이들을 깨우기 위해 속담 민담 판소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더 큰 깨달음이 왔다. 오 목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정서는 한(恨)이 아니라 신명 웃음 해학 풍자였다”고 말했다.
“일제 강점기 카프(KAPF) 문학가들이 의식화를 위해 내건 구호가 ‘춘향가처럼 재밌게 써라’였습니다. 과장법 반어법 풍자법 반복법 등 한국적 수사학과 레토릭의 최고봉이 판소리 다섯 마당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 언어로 우리 정서를 나타내면서 유쾌하고 즐거운 설교, 충분히 가능합니다. 기쁘고 복된 복음의 진리와도 이어지고요.”
한국적 콘텐츠로 신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교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평생을 바쳐 연구해야 한다. 더구나 신학 교수들은 이런 쪽에 별 관심이 없다. 지난 11일 방문한 대은교회 옆 오 목사 사택 서가에는 속담사전만 어른 허벅지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속담뿐 아니라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등 외국어 사전과 온갖 종류의 동양 고전이 1∼2층 서재에 나눠 꽂혀 있었다. 신학 교수의 서가는 저리 가라였다.
오 목사는 “설교는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종합예술”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얘기한 한국적 설교의 첫째 조건이 아이러니하게도 원어로 성경 읽기였다. 오 목사는 “신자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어 목회자는 성서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히브리어 등 원어는 목회자의 영적 무기”라고 강조했다. 이 외에 그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 동양철학과 언어감각, 마지막으로 설교자의 인격을 강조했다. 이 요소들이 없는 채로 설교한다면 “자격 없는 의사가 환자를 수술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사전과 원어 다음은 메모였다. 한 편의 설교를 위해 그가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는 그동안 써 온 수백 권의 공책이 웅변해주고 있었다. 그는 A4 용지 반절 크기의 공책에 샤프펜슬로 빠르게 적어 내려간 메모들을 엮어서 주일 설교를 준비한다. 한번 설교에 인용한 건 반드시 줄을 그어 표시해 재탕을 막고 자기 표절을 막는다. 설교를 준비할 때는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는다. 천재지변으로 준비를 못할 경우에 대비해 주일 낮 예배용 원고 형태로 교열까지 마친 설교문이 ‘설교비축’ 파일에 18편 장착돼 있다.
오 목사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보통 일주일에 10차례 설교해야 한다”며 “너무 많으니까 대충하게 되고 표절 유혹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럼에도 목회자의 비슷한 설교를 귀신같이 알아채는 건 바로 성도들”이라며 목회자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스스로 “평생 농촌에서 시골교회만 담당했다”고 낮추고 있지만 오 목사는 3권의 책을 낸 저술가다. 쉬운 언어로 성경을 해석한 ‘구약 문지방 넘기’와 ‘신약 문지방 넘기’가 있고, 내용이 너무 어려워 이단이 자주 악용하는 계시록 강해를 위해 ‘요한계시록은 쑥떡이다’를 내놓았다. 내년엔 ‘신나는 누가복음 이야기’ 출판을 준비 중이다.
오 목사는 “설교가 성경과 멀어지고 교인들이 성경과 멀어지면 교회가 위기에 빠진다”며 “성경적인 설교를 해야 한국교회가 살아난다”고 말했다.
군산=글·사진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속담·민담·판소리 활용해 눈높이 설교합니다”
입력 2018-07-24 00:01 수정 2018-07-24 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