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임금 올려 일자리 기대하는 건 애당초 모순”

입력 2018-07-23 04:03
현실과 괴리 사실상 정책실패 지적… 저소득층 소득 늘어도 절대 액수 적어
소비 증가→투자 확대로 선순환 안돼… 최저임금 카드도 충격 흡수장치 먼저


문재인정부가 ‘경제 딜레마’에 빠졌다. 핵심 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은 헛돌고 있다. 고용지표는 바닥을 치고, 소비·투자는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한 최저임금은 격렬한 저항에 부닥쳤다. ‘노동비용 증가’ ‘을과 을의 갈등’ 등 부작용만 부각됐다.

여기에다 소득주도성장을 보완하는 혁신성장은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산업구조 고착화, 새로운 성장동력 부재 등과 맞물려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음까지 커진다. 왜 ‘J노믹스’(문재인정부 경제정책)는 제자리를 맴돌까. 국민일보는 22일 경제 전문가 12명에게 소득주도성장 정체 원인, 고용지표 악화 이유, 최저임금의 적절성, 혁신성장의 해법을 물었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의 임금을 끌어올리겠다는 소득주도성장 취지에는 공감했다. 다만 정책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나타나고 있어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당초 기대했던 ‘저임금 노동자와 가계의 소득 상승→소비 증가→기업 투자 확대’라는 선순환 고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임금(소득)을 늘렸는데 일자리도 늘어나는 건 상식적으로도, 경제학적으로도 맞지 않다”면서 “사실상 정책이 실패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선순환 고리가 끊어진 이유로는 ‘저소득층에만 한정된 정책 방향’이 꼽혔다. 이경수 메리츠종금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소비성향만 따졌을 때는 저소득층이 더 높지만 소비하는 절대 금액은 고소득층이 훨씬 크다. 저소득층의 소득 인상에만 근거를 두는 소비 증가 정책은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수단으로 등장한 ‘최저임금 인상 카드’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컸다.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방향성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얻었다. 문제는 속도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저임금이 2년 연속 두 자릿수로 인상된 이상 어느 정도 충격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상가임대차보호법 국회 통과나 프랜차이즈 관련 대책 등 안전망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인상폭을 유지하려면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업종·지역에 따라 다른 생산성을 반영해 최저임금을 차등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꽉 막힌 소득주도성장을 풀 열쇠로 혁신성장을 지목했다. 하지만 정부의 혁신성장에 알맹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혁신성장에 콘텐츠가 없다”고 했고,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규제는 놔두고 말로만 하니까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혁신성장의 지렛대로 ‘과감하고 속도감 있는 규제개혁’을 첫손에 꼽았다. 하 교수는 “진정한 혁신성장을 위해 기득권을 보호하는 규제와 장벽을 없애고, 새로운 산업과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규제개혁 과정에서 이해상충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며 “이게 국민이 정부에 기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임주언 박재찬 양민철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