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라고 할 정도로 일자리 증발 상황은 심각하다. 경제 전망도 암울하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에서 2.9%로 낮췄다. 경제 전문가들에게 소득주도성장이 왜 헛도는지, 일자리 창출이 안 되는 원인은 뭔지, 최저임금 인상폭은 적절한지, 성과물 없는 혁신성장의 해법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소득주도성장 왜 헛도나… “고용 악화 대비한 일자리 대책 미흡”
전문가들은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의 수단으로 ‘최저임금 인상’만 들고 있었던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금을 올리면 기업과 자영업자는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대비한 일자리 대책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득 주도가 맞는 방향이긴 한데 문제는 그 방법”이라며 “지금까지는 최저임금 같은 제한적인 수단에 의존해 왔던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소득을 늘려 성장을 이끈다는 구조에 의문을 표한 이들도 있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는 0.1% 포인트 떨어진데 비해 예상 신규 취업자 수는 크게 낮아졌다”며 “고용 악화가 단기 현상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민성환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주도성장을 중장기 목표로 설정한 만큼 현 시점에서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소득주도성장의 보완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근로소득장려세제 등 생산과 연계되는 재정 지출, 근로 친화적 재정 지출을 잘 개발해 쓰면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혁신성장은 오른 임금을 부담하지 못하는 산업 부분이 생기면 혁신을 통해 새로 일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라며 혁신성장을 강조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일자리 창출 안 되는 원인은… “산업화 진전·정책 불확실성이 고용 막아”
전문가들이 진단하는 고용지표 악화 원인은 복합적이다. 기업 경쟁력 저하부터 산업·인구구조 변화, 최저임금 인상, 정책 불확실성 등을 망라한다. 하나가 아닌 만큼 해법을 찾는 일도 간단치 않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지난해 정한 최저임금이 올해부터 적용됐고, 지난 2월부터 고용이 감소했다”며 최저임금을 겨냥했다. 이경수 메리츠종금증권 리서치센터장도 “현재 상황이 경기가 급격히 악화되는 시점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것은 다른 요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최저임금이 오르니까 자영업자들은 사람을 더 쓰기 어려워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현욱 KDI 경제전망실장은 “최저임금 인상과 인구구조 변화 등이 영향을 미쳤다”면서도 기업들의 경쟁력 저하를 근본 원인으로 꼽았다. 김 실장은 “경제 성장은 기본적으로 누군가 물건을 사줄 때 고용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산업화 진전으로 노동력의 사용을 줄여나가는 과정이라 제조업에선 고용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제조업의 신규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만6000명 줄면서 3개월 연속 감소세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최저임금 인상 적절한가… “산업·업종·지역에 따라 차등화해야”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소득격차 해소 등을 위해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문재인정부 원칙에 동의했다. 다만 가파른 인상폭을 우려했다. 속도 조절에 무게를 실었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상승이 되레 소득주도성장에 ‘브레이크’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인상폭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하기에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꼬집었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도 “소득주도성장 기조와 방향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이 빠르게 오를수록 기업 입장에서는 인력을 채용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이 현재의 상승폭을 유지하려면 ‘충격 흡수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도 잇따랐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산업과 업종, 지역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고 여기에 대처할 여력이 없는 것 같다”면서 “(충격을 최소화하려면) 산업 구조조정, 공정 자동화 작업이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혁신성장을 위한 해법… “기업 비용 늘리는 정책 최소화 절실”
전문가들은 성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는 혁신성장을 위한 ‘0순위 해법’으로 규제개혁을 거론했다. ‘과감’ ‘속도감’이라는 단서조항을 붙였다.
특히 전문가들은 혁신성장의 진행 과정, 속도 등에 비판적이었다. 규제 합리화나 신산업 발굴 등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일을 벌일 수 있는 판이 없다. 기업가들이 뭔가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라며 벤처기업 육성을 주문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혁신성장의 주체인 기업은 노동비용 상승 압박까지 받아 신규 일자리 창출도 여의치 않다”며 “기업이 ‘비용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인식할 정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 수정·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혁신성장”이라며 “무엇보다 기득권층을 보호해주는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드론이나 무인 자율주행차 같은 산업에 있어서 중국이 한국보다 앞서나가는 비결은 규제의 정도 차이에 있다”면서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혁신 기업이 나와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과감한 형태의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재찬 기자
설문에 참여한 경제 전문가 명단 (총 12명, 가나다순)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김현욱 KDI 경제전망실장, 민성환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 이경수 메리츠종금증권 리서치센터장,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소득주도 성장 딜레마] “기업이 일 벌일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줘야”
입력 2018-07-23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