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종으로 이슬람 국가에 돌아갈 경우 종교 박해 위험… 이란서 온 제 친구 난민 인정해주세요”

입력 2018-07-20 04:00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19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이란 국적인 같은 학교 친구를 난민으로 인정해 달라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지난 11일엔 靑에 국민청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격려 “법원 등서 전향적인 판단을”


서울 송파구의 한 중학교 학생과 교사 50여명은 19일 방학식을 마치자마자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출입국·외국인사무소로 향했다. 이들의 손에는 ‘친구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적힌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학생들은 동창인 이란 출신 A군이 난민 신청에서 탈락하자 구명 피케팅 시위에 나섰다.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였지만 A군은 신변 노출을 우려해 모자를 쓰고 마스크도 착용했다.

오후 2시쯤 좁은 도로에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집회를 시작했다. 친구들이 대열을 맞출 동안 A군은 준비해온 손팻말과 피켓을 나눠줬다. 거기에는 ‘친구와 함께 공부하고 싶어요’ ‘제 이란 친구를 난민으로 인정해주세요’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학생들은 시위가 낯설어 보였다. 대개의 시위에서처럼 구호도 없었고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대신 A군을 위해 앰프를 켜고 기타를 치며 ‘걱정말아요 그대’ ‘슈퍼스타’ 등 노래를 불렀다. A군은 친구들의 노래를 들으며 다시 난민신청을 하러 갔다. A군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변에선 “파이팅!” 소리가 들렸다. A군과 동행한 서모(15)양은 “장난이 많았던 친구였는데 요즘은 장난도 덜 치는 것 같다. 저희끼리는 ‘별일 없을 거다’라고 말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A군은 2010년 7월 아버지와 한국에 왔다. 이듬해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면서 개종했다. 하지만 엄격한 이슬람국가인 이란으로 돌아갈 경우 종교적 박해의 위험이 있어 2년 전 난민신청을 했지만 탈락했다. 친구들은 지난 11일 A군을 지켜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다. 이날 오후까지 3만명 가까이가 동의했다. 김모(15)양은 “청원을 한 뒤 친구들끼리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피케팅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A군은 “친구들이 없었으면 이렇게까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란은 개종자들을 차별하고 심하면 사형까지 시켜서 본국으로 돌아갈까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A군의 왼팔에는 십자가가 매달린 팔찌가 있었다. 그는 “모델이 꿈이라 모델워킹을 배웠는데 (한국에 남아) 한현민처럼 런웨이에 서는 게 소망”이라고 말했다.

앞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해당 중학교를 방문해 A군을 격려했다. 조 교육감은 “단순한 난민 문제가 아닌 교육권의 문제”라며 “(A군이) 추방당해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되고 친구들과 함께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유엔이 보장한 아동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출입국·외국인사무소, 법원, 법무부가 전향적인 판단을 내려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