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교회가 잠든 사이

입력 2018-07-20 00:00

청소년 시절부터 영화를 무척 좋아했던 필자는 한동안 명작 비디오테이프를 수집하곤 했다. 잘 만든 영화는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을뿐더러 볼 때마다 새로운 영감을 준다.

오랜 해외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장기간 처가 지하에 처박힌 채 쓰레기로 전락한 이삿짐을 정리했다. 과거 우리 가족이 좋아하던 ‘당신이 잠든 사이(While You Were Sleeping)’라는 로맨틱 멜로물이 눈에 띄었다. 전형적 할리우드 오락물인 이 영화는 한 남자가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인 상태에서 그를 짝사랑하던 여인의 사랑이 실현된다는 뻔한 해피엔딩 스토리다.

허구적 영화나 소설과 달리 현실 세계에서 깨어 있어야 할 사람이 잠들어 있다면 위험천만한 일이다. 1938년 처칠은 ‘영국이 잠든 사이(While England Slept)’라는 저서를 통해 당시 영국이 다가오는 전운(戰雲)을 간과함으로써 문제를 키웠다고 비판했다. 도널드와 프레데릭 케이건은 ‘미국이 잠든 사이(While America Sleeps)’라는 저서에서 오늘날 미국이 1930년대의 영국과 유사한 오류를 답습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침략 위협을 감지한 이율곡의 십만양병설을 무시해 임진왜란이라는 국란을 초래한 역사를 ‘조선이 잠든 사이’라는 제목으로 집필해도 괜찮을 듯싶다.

정부와 국민, 정계와 재계, 언론인과 학자, 군부와 민간단체 모두 깨어 있어야 나라가 바로 서는 법이다. 무엇보다 교회가 깨어 있어야 한다. 중세교회가 기나긴 잠에 빠진 동안 암흑기가 도래해 하나님 나라가 심하게 훼손됐던 흑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시도가 500년 전 개혁운동이었다. 그 연장선상에 서 있어야 할 한국교회가 되레 제2의 암흑기를 방불케 하는 암울한 시대를 자초하고 있다. 하나님의 공의로 세상을 꾸짖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보듬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의 질타와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세상이 사뭇 악해져서 교회의 역할이 위축된다는 구차한 책임회피식 변명을 내세운다. 하지만 세상이 어두워서 복음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법은 없다. 역사상 세상이 악하지 않은 때가 있었는가. 타락 이래 세상은 항상 악했고 앞으로도 계속 악할 것이다. 어둠이 깊을수록 오히려 우리의 작은 촛불이 더 빛을 발하는 법이다. 세상이 깜깜한 게 문제가 아니라 빛을 잃은 교회가 문제다. 세상을 탓할 게 아니라 교회가 회개해야 옳다.

오늘날 세상의 눈에 비친 교회는 분명 깨어 있는 모습이 아니다. 한때 종교적 선호도가 가장 높았던 기독교가 존중받기는커녕 멸시와 기피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개인 전도를 시도해 보라. 최소한 중립적 반응을 보였던 과거와 달리 이제 대부분 사람은 노골적으로 교회와 복음을 거부한다. 한국의 무종교인이 종교를 가질 경우 기독교를 선택할 확률은 10명당 1명에 불과하다는 설문 결과는 우리네 교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충격적 통계가 아닐 수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잠들었기 때문이다. 빛과 소금의 본질이 실종된 채 시끄럽고 천박한 종교성으로 일관하고 있는 우리 모습은 바리새주의의 회칠한 무덤을 닮아있다. 온갖 부조리와 범죄의 배후에 목회자와 교인이 도사리고 있는 모습으로 인해 세상은 복음을 진지하게 접할 기회마저 박탈됐다.

세상은 교회 때문에 살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교회가 잠들면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깨운다. 잠든 요나 때문에 죽게 된 이방선원들이 요나를 깨웠듯이 오늘날 무종교인과 매스컴이 교회를 노골적으로 책망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무질서와 도덕 부재를 탄식하며 ‘맞아죽을 각오로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이란 책을 저술한 무신론자 이케하라 마모루는 교계의 무너진 모습이 그의 마지막 기대마저 꺾어버린다고 푸념했다.

위기에 처한 이 나라와 사회, 민족과 역사의 진정한 출구는 교회 안에 있다. 깨어 일어나 빛을 발하든지 계속 잠들어 망하든지, 선택은 우리의 것이다.

정민영 (전 성경번역선교회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