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캠퍼스 초입에 있는 백주년기념관을 끼고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루스채플이 나온다. 1974년 세워진 이 예배당은 현대적 디자인이 적용돼 45년이 지난 지금도 연세대를 상징하는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무엇보다 지붕이 독특하다. 지붕 한쪽 면만 건물과 연결돼 있고 나머지는 허공에 떠 있는 기하학적 형상이다. 마치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 기도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건축 기법을 ‘캔틸레버’라고 부른다. 70년대 기술로는 상당히 앞선 공법이다. 건물 자체로도 눈길을 끌지만 예배당의 이름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루스라는 명칭은 미국인 헨리 R 루스(1898∼1967·사진)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는 1936년 ‘헨리루스재단’을 설립했다. 루스채플은 이 재단의 막대한 지원으로 빛을 봤다. 전 세계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한 공익사업을 펼치는 재단인 만큼 같은 이름의 예배당이 대만에도 있다. 1963년 완공된 둥하이대 예배당 이름도 루스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루스는 ‘잡지왕’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1923년 선보인 ‘타임’이 그의 첫 작품이다. 타임의 성공에 힘입어 1930년엔 경제지 ‘포천’을, 36년엔 포토저널리즘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되는 ‘라이프’까지 창간했다. 만들기만 하면 대성공을 거둔 그의 잡지들은 미국 저널리즘 역사에 굵은 족적을 남겼다.
루스는 재벌 반열에 올랐지만 더 겸손해졌다. 재단을 통해 세계 각지에 지은 예배당이 이를 증명한다. 재단은 예배당뿐 아니라 교육프로그램 지원과 장학사업까지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이런 헌신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연세대 외에도 서울 광진구 장로회신학대가 2001년 완공한 세계교회협력센터에도 재단의 기금이 투입됐다. 이화여대는 2015년부터 재단과 공동 국제세미나를 열고 있다. 재단은 아시아에선 최초로 이화여대를 파트너 기관으로 선정하고 여성 지도자 양성을 위해 165만5000달러(약 18억7260만원)를 지원했다. 최근 방한한 마이클 길리건 헨리루스재단 회장은 2020년까지 이화여대와 협력을 연장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가 나눔의 삶을 살기로 한 건 가정사와도 관련이 깊다. 1898년 중국 산둥성 텅저우에서 태어난 뒤 선교사 자녀학교인 체푸학원에 다니며 동양문화를 접했다. 1900년엔 의화단의 난을 피해 급히 서울로 피란했던 일도 있다. 루스의 부친은 미국장로교 선교사로 중국 산둥성에서 사역했던 헨리 W 루스다. 일생 선교사로 살았던 부모는 그에게 신앙의 유산을 남겼다. 그 유산들이 지금도 재단 곳곳에 남아 있다. 헨리루스재단을 소개하는 홍보 문구 첫 줄엔 다음과 같은 고백이 기록돼 있다. “중국에서 교육 선교사로 활동했던 부모님을 기리며 이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발굴! 이 사람] 세계 각지에 예배당 세운 ‘잡지왕’… 연세대 등에도 ‘손길’
입력 2018-07-1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