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을 뛰어넘어 기독작가 ‘책의 고향’으로…

입력 2018-07-19 00:01
경기도 양평 ‘소나기마을’엔 소설가 황순원의 대표작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가 건너던 징검다리를 재현한 곳이 있다. 새 책 ‘동주에서 아야코까지’는 기독 문인 28인의 ‘책의 고향’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국민일보DB
기독교문학이란 무엇일까. 이렇게 물으면 기독교를 소재로 하거나 신앙 간증 스토리를 떠올리기 쉽다. 시인이자 국민일보 종교국 부국장인 이지현 기자의 새 책 ‘동주에서 아야코까지’(국민북스)에선 이런 문장을 만나게 된다.

“기독교 교리나 사상을 담은 작품이 기독교문학이라 생각합니다. 선교문학이나 간증문학이 기독교문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작업, 인생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 세밀히 표현하는 작업이 하나님의 창조역사를 돕는 길이라 생각합니다.”(300쪽)

‘장마’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소설가 윤흥길의 말이다. 어려서부터 신앙을 가진 그는 평생 문학이란 그릇에 어떻게 기독교 정신을 담아낼까 고민해 왔지만 정작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우리는 기독교문학을 알아보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간 적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한국의 시인 윤동주, 일본의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처럼 알려진 기독교 문인부터 윤흥길처럼 우리가 미처 몰랐던 작가까지 28명의 기독 문인을 소개한다. 여정은 2016년 4월 서울 종로구 청운동 ‘시인의 언덕’을 찾아가 시인 윤동주의 문학과 삶을 조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2년간 김승옥 박목월 박두진 황순원 권정생 황금찬 김현승 등 여러 문인의 삶과 문학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직접 발로 찾아다녔다. 저자는 그 공간에 ‘영적 저수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떤 문인에겐 자기가 살던 곳이었고 다른 이에겐 작품의 무대였다. 이곳에서 발견한 이들의 문학과 삶의 흔적,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정성스레 길어 올린 뒤 독자들 앞에 정갈하게 펼쳐 내보인다.

‘복음증명의 문학’을 추구했던 아야코의 ‘시오카리 고개 기념관’은 짙은 잔상을 남긴다. 그의 대표작 ‘빙점’과 더불어 ‘시오카리 고개’ 등 초기 대표작을 집필한 집을 개조한 곳이다. 노후화됐다는 이유로 철거 위기에 처했던 집을 팬들이 나서서 지켜냈다고 한다. 기념관이 있는 지명이자 작품명인 시오카리 고개는 ‘설령’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기독교에 거부감이 컸던 철도 직원 나가오 마사오가 복음을 수용하고 열차 탈선을 막기 위해 자기의 생명을 던졌던 실화를 토대로 쓰인 작품이다.

폭설로 기념관은 휴관했지만 사전에 연락을 받은 관리인이 무릎까지 쌓인 눈을 치워 놓고 저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2층 서재 테이블에 놓인 원고지와 잘 깎인 연필을 보며 저자는 그 시절 아야코와 아내를 도와 구술필기를 도왔던 남편 미쓰요,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린다.

저자는 ‘생활의 발견’으로 유명한 중국 작가 린위탕(임어당)의 격동적인 신앙 여정의 흔적을 타이베이 ‘린위탕 하우스’에서 확인한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20대에 스스로를 ‘이교도’라 불렀던 린위탕은 오랜 방랑 끝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이교도에서 기독교인으로’라는 작품을 남겼다.

‘대지’로 유명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 펄 벅 여사가 구한말 한국을 배경으로 쓴 소설 ‘살아있는 갈대’를 집필하기 위해 8차례나 한국을 찾았던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저자는 경기도 부천 ‘부천펄벅기념관’을 찾아 펄벅의 삶을 관통했던 고난과 ‘영혼의 나이테’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렇듯 저자의 안내를 받아 시공간을 이동하며 문인들의 숨은 사연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인들이 저마다 천착했던 인간의 본성, 죄와 구원, 사랑과 용서의 문제까지 기독교적 가치와 삶의 주제를 생각해보게 한다. 작품은 물론 문인들의 삶에 대한 저자의 단아하면서도 담박한 서술이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어떤 책은 그 책 한 권을 읽는 것으로 끝나는 대신 독자가 생각지도 않았던 여러 갈래로 독서의 지평을 열어준다. 이 책이 바로 그렇다. 마음에 와닿는 작가가 있다면 그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어봐도 좋겠다. 혹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공간을 마주했다면 올여름 휴가에 그곳을 찾아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책장을 덮을 무렵이면 기독교문학에 대한 나름의 새로운 정의를 갖게 된다는 것도 이 책이 가진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