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특별수사단은 국군기무사령부가 계엄령 검토 문건의 원본(종이본)을 파기한 사실이 드러난 만큼 증거인멸 여부를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전망이다. 수사 대상은 누구의 지시로 원본을 파기한 뒤 문건을 USB에 저장해놨는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특별수사단은 조만간 기무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할 예정이다.
기무사가 지난해 3월 초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 문건은 종이로 돼 있었다.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이 문건을 한 전 장관에게 보고했다. 조 전 사령관이 한 전 장관 지시에 따라 이 문건을 보존해놓을 것을 지시했다는 증언도 나온 상태다. 원본뿐 아니라 문건 작성 과정에 참고한 문서 대부분은 한 전 장관에게 보고된 직후 파기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복수의 군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USB엔 계엄령 문건과 일부 자료만 저장돼 있다. 계엄 시행계획 등 민감한 내용을 담은 문건은 저장돼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관계자는 17일 “USB에는 언론에 이미 공개된 문건 말고 유의미한 자료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히 의혹은 컴퓨터 파일로 남은 문건에 결재란과 보고 날짜 등이 누락돼 있다는 점에서 증폭되고 있다. 기무사가 이 문건에 문서번호를 매기는 등 정식 문서로 원본을 보존하지 않은 데에는 증거인멸 의도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다. 원본의 일부 내용이 삭제됐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내용 변경이 가능한 파일 형태로 USB에 저장해놓은 데 대해서도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 문건 작성에 관여한 기무사 일부 요원은 “파일로 된 문건은 원본과 동일하게 결재란 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건이 기무사 서버에 저장돼 있지 않았다는 부분도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나중에 문제가 될 것을 예상하고 파일을 서버가 아닌 USB에 담아 보관해놨을 개연성도 적지 않다. 법조계에선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보관되는 문서가 USB에 저장돼 있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국방부 사이버 댓글 사건 조사 태스크포스(TF)는 지난해 12월 이명박정부 당시 기무사의 사이버 댓글 공작 활동을 수사하기 위해 경기도 과천의 기무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당시 TF가 기무사 본부 서버까지 들여다봤지만 이번 문건을 발견하지 못했다.
문건 파기 및 USB 저장 과정에서 어떤 지휘라인을 거쳤는지도 핵심 수사 대상이다. 한 전 장관과 조 전 사령관은 현재 민간인 신분이기 때문에 민간 검찰 수사가 진행될 수 있다. 조 전 사령관 등 지시로 문건 작성에 관여했던 소강원 현 기무사 참모장에 대한 특별수사단의 소환 조사도 조만간 이뤄질 예정이다.
국방부 주변에선 기무사가 ‘이중 플레이’를 했다는 소문도 나돈다. 기무사가 문건을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만 보고한 게 아니라 파일을 출력해 다른 경로로 청와대 등에 보고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기무사는 자체적으로 문건을 발견해 조기 보고했는데 송 장관이 뭉개고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려는 작업에 들어갔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기무사 관계자는 “문건은 송 장관에게만 보고됐으며 청와대 등에 따로 보고되지 않았다”며 “법률적 검토만 진행한 참고 자료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파일로 보관해놨다는 진술이 있다”고 해명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증거인멸 여부·파기 과정 지휘라인 집중 수사
입력 2018-07-17 18:09 수정 2018-07-17 2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