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후반 북한에선 식량난과 자연재해로 수백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 ‘고난의 행군’이라 불린 참혹한 시기에 북한 주민들은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맨몸으로 두만강을 건넜다. 음식을 구걸하며 유랑하는 북한 아이들인 ‘꽃제비’도 이즈음 크게 늘었다.
북한선교단체인 이웃사랑선교회 대표 박다니엘(49) 선교사는 99년부터 중국 다롄에 머물렀다. 당시 다롄항에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구걸하는 꽃제비가 많았다. 가난으로 부모를 잃은 이들 꽃제비의 가족이 돼 주기로 마음먹은 박 선교사는 옌지 선양 단둥 등 중국 동북 지역에 그룹홈을 세워 아이들을 품었다.
지금은 한국으로 들어와 펜션을 운영하면서 오갈 데 없는 탈북 어린이와 청소년을 돌보고 있는 그를 지난 13일 인천 강화도 시내산펜션에서 만났다.
‘예수님은 북한 아이 한 명 위해 십자가 지실 분’
그는 재미교포 1.5세다. 미국 캔자스시의 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에서 공부하고 남침례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선교에 관심이 많아 담임목회 제안을 거절하고 시애틀의 예수전도단(YWAM)에서 간사로 활동했다.
일본 선교를 준비하던 그는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YWAM 북한선교학교에서 공부해 보라는 것이었다. 처음엔 거절했으나 성경을 묵상할수록 북한 사역자나 탈북민을 우연히 만나는 일이 늘었다. ‘북한에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해당 과정에 등록한 그는 학기 막바지에 YWAM 본부에서 기도 중 이런 음성을 듣는다. ‘예수님은 단 한 명의 북한 아이를 위해서도 십자가를 지실 분이다. 너는 그렇게 할 수 있느냐.’
그는 이때 모든 걸 버리고 북한 사역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98년 과정을 마친 박 선교사는 이듬해 미국교회의 지원을 받아 다롄으로 떠났다. 길거리와 부둣가, 허름한 여관 등에서 꽃제비와 탈북 여성을 만났다. 꽃제비 대부분은 길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그는 조선족 성도의 도움을 얻어 집을 임차해 이들을 돌봤다. 아침저녁으로 성경과 중국어를 가르쳤고 함께 식사하며 가족같이 지냈다.
한국교회, 탈북민 아이 품으며 통일 연습해야
꽃제비를 돌봐주는 곳이 있다는 소식이 알음알음 퍼지자 조선족이나 한국인들이 그에게 아이들을 한 명씩 데려왔다. 99년 2명으로 시작한 그룹홈은 금세 10여명으로 늘었다. 당시 중국은 ‘한 자녀 정책’을 펼치던 시절이어서 아이들이 많으면 공안의 단속 대상이 되기 쉬웠다. 그룹홈을 위한 집을 3채로 늘리고 그와 조선족 성도들이 집집마다 상주하며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공안의 단속을 피하려면 이사를 자주 할 수밖에 없었다. 다롄 선양 같은 중국 동북지역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남방지역의 도시까지 옮겨 다녔다. 당시 그는 그룹홈 사역과 동시에 탈북자와 매주 예배를 드리는 ‘탈북민 교회’도 하고 있었다.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민을 한국대사관에 들여보내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일반에 공개되기 힘든 ‘음지(陰地) 사역’을 펼친 것이다.
이 때문에 2002년엔 중국 안전국의 조사를 받았고 2003년엔 공안에 체포돼 옌지에서 1년3개월간의 교도소 생활도 했다. 2011년에도 공안에 체포돼 구치소에서 40일간 구금된 후 상하이에서 미국으로 추방됐다.
한국에 온 건 돌보던 아이 4명이 태국 국경지대에서 한국 입국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다. 태국에서 이들과 재회한 그는 2011년 서울에서 첫 그룹홈을 꾸렸다. 홀로 탈북한 청소년, 탈북 도중 엄마가 북송된 아이 등을 받다 보니 인원수가 늘고 공간이 부족해 경기도 파주에 이어 강화도로 터를 옮겼다. 지금은 그의 아내와 세 자녀, 고3인 탈북 청소년과 탈북민 홀아버지를 둔 세 살배기가 가족이 돼 함께 지내고 있다.
그는 조만간 탈북민 어린이·청소년뿐 아니라 탈북민 가정과 공동체 생활을 하며 ‘통일 마을’을 이룰 것을 계획하고 있다. 식구를 늘리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통일이 되면 한국사회는 마약중독자, 버려진 아이들, 깨진 가정 등 여러 어려움을 가진 북한 주민을 적지 않게 마주할 것입니다. 이들에게 통일은 천지개벽과 같습니다. 어려움을 겪을 이들을 위해 지금부터 탈북민 어린이를 품는 성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인천=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미션&피플] 탈북민 자녀 돌봄 사역 헌신 박다니엘 선교사
입력 2018-07-18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