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경영참여’ 않고 주주권 적극 행사

입력 2018-07-17 18:47 수정 2018-07-17 21:49

국민연금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이 공개됐다. 대한항공 ‘오너 갑질’ 사태처럼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 발생하거나 배당이 낮을 때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한다는 게 골자다. 찬반논란이 뜨거웠던 경영참여와 관련된 주주권 행사는 초안에서 빠졌다.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간섭한다는 우려가 나오자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스튜어드)처럼 투자한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는 행동 지침이다.

보건복지부는 1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관련 공청회를 열고 하반기부터 시행할 제도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초안은 지난 3월까지 진행된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와 복지부 등 실무진의 검토를 거쳐 마련됐다. 복지부는 오는 26일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도입 여부를 의결할 예정이다.

초점은 주주권 행사 범위의 확대다. 우선 국민연금은 올 하반기에 배당이 낮은 기업 등을 대상으로 대화에 나선다. 예상치 않은 기업 가치 훼손 이슈가 발생했을 때 비공개 대화를 하고 필요하면 의결권 행사와 연계한다. 사실상 기업을 압박하는 것이다.

내년에는 횡령, 배임 등 기금 수익과 밀접한 분야를 중점관리 사안으로 정해 문제기업과 비공개 대화를 할 계획이다. 2020년에는 비공개 대화를 했는데도 개선하지 않은 기업의 명단을 공개하고 공개서한을 발송하는 등 수위를 높인다.

재계에서 우려했던 경영참여는 미뤄졌다.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거나 의결권 대리행사를 권유하는 게 대표적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다. 복지부 관계자는 “연금사회주의나 경영 간섭 우려를 반영해 경영참여 부분을 빼고 도입하자는 게 실무 검토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기금 운용의 독립성 강화와 관련해서는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신설키로 했다. 수탁자책임전문위는 현재 9명인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확대·개편해 가입자대표가 추천한 민간 전문가 14명으로 구성된다. 투자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는 물론 문제 기업 투자제한 여부까지 결정한다.

국민연금이 운용자금을 맡긴 위탁운용사에 의결권 행사를 위임하는 방안도 시행된다. 국민연금의 과도한 영향력을 내려놓겠다는 취지다. 위임 시기는 투자일임업자의 의결권 위임행사를 허용하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 절차가 완료되는 대로 정해진다. 다만 위탁운용사를 선정·평가할 때 스튜어드십 코드를 시행하는 곳에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투자신탁운용 박경종 컴플라이언스 실장은 “대부분 운용사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인적·물적 여건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드러냈다. 송민경 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은 “빠진 부분이 아쉽긴 하지만 지금 상황보다는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안”이라며 “수탁자책임위의 경우 내부통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반면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비경영권자의 경영참여를 확대해서 경영권을 강력히 규제해야 할 만큼 경영권이 확보돼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