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럽을 풍미했던 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판화성서가 국내에서 대형 그림책으로 출간됐다. 당시 판형과 같은 크기인 가로 28.5㎝, 세로 42.3㎝에 책 무게만 5.5㎏이다. 스위스에서 들여온 최고급 종이를 사용해 아날로그 그림책의 물성과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17일 서울 중구 컬처센터 ‘순화동천’에서 ‘귀스타브 도레의 판화성서’ 출간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활자 미디어의 위기를 말하지만 책을 통해 활자 미디어의 본성과 그 아름다운 당위성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발간 취지를 밝혔다.
평생 출판인으로 살아온 김 대표는 전 세계를 다니며 아름다운 종이책을 만났다. 도레의 작품을 접하고 수집하면서 ‘큰 책 시리즈’를 펴내기로 결심했고 판화성서를 시리즈 첫 책으로 선보였다. 한길책박물관이 소장한 1866년판 ‘The Holy Bible’에 실린 성화 등 241점, 그림과 관련된 성경 본문을 함께 수록했다.
책을 기획하고 해설을 쓴 신상철 고려대 교수는 “도레는 낭만주의와 상징주의를 연결했던 작가로 빈센트 반 고흐 등도 그의 작품에 매료됐다”며 “2014년 오르세 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을 계기로 재조명받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빛을 비추다’는 뜻의 ‘일러스트’란 단어가 암시하듯 프랑스에서 삽화는 전통적으로 텍스트를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도레는 독자적인 회화 작품처럼 조형성이 강한 삽화를 큰 판형으로 제작하면서 160명의 목판화가와 함께 작업했다. 책 자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봤던 것이다. 당시 동판 기술이 확산됐지만 도레는 기계가 아니라 손으로 이미지를 만들어야 영적인 힘이 담긴다고 생각했다고 신 교수는 설명했다.
도레는 목판화와 회화 등 성화 1만점을 남겼다. 당시 불어 영어 스페인어 성경이 제작됐고 도레의 판화가 실린 성서를 소장하는 게 부르주아 계층에서 유행일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신 교수는 “이미지와 판형이 크고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에 대한 수요는 시대를 떠나 언제나 존재했다”며 “도레는 기존 서양화가들의 도상학을 계승하는 동시에 기존에 많이 그리지 않았던 신약성경 장면 등을 독창성 있게 담아냈다”고 말했다.
한길사는 판화성서의 소장 가치를 높이기 위해 각 권마다 번호를 매기고 1000권만 찍었다. 김 대표는 “수록된 그림들을 생각하면 책값 33만원이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도레가 삽화를 그린 ‘신곡’과 ‘런던 순례여행’ 등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귀스타브 도레의 판화성서 큰 그림책으로 만난다
입력 2018-07-18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