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림의 명화로 여는 성경 묵상] 말씀만 하사

입력 2018-07-20 17:29
베로네세의 '예수와 백부장'│1575∼1580, 캔버스에 유채, 192×297㎝,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전창림 홍익대 바이오 화학공학과 교수
예수님께서 활동하셨던 시대는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고 로마의 지배를 받던 때다. 로마 군인은 정복자이므로 졸병이라도 그 위세가 대단했는데, 백부장이면 부하가 백 명인 고위 장교로서 엄청난 권세를 지닌 자였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유대인들에게 회당을 지어 줄 만큼 인격과 재력을 갖춘 사람인 모양이다. 그의 하인 중 하나가 병이 들었다. 당시 하인은 살아있는 재산으로서 아프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인이 아프다고 백방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을 만큼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의 소식이 들렸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됐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부탁을 받고 손수 백부장의 집으로 가서 고쳐주시고자 하셨다. 그러자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오실 필요까지는 없고 단지 “말씀만 하사”(눅7:7) 명령만 내려주시면 하인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었다. 자기도 부하에게 이리하라면 이리하고 저리하라면 저리하니, 천하 만물을 주재하시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만 하시면 뭐가 안 될 것이냐는 믿음이다.

이 그림을 보며 우리의 믿음을 다시 보았다. 정말 우리에게 백부장만 한 믿음이 있을까. 주일성수, 십일조 잘하며 전도도 하는 나를 예수님이 도와주시겠지 하는 경건한 교만(?)이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부르짖는 “주시옵소서!” 소리에 진정 이런 백부장만 한 믿음이나 있는 걸까.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눅7:7∼9)

#베로네세 파올로 카라치(1528∼1588)=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로 본명은 파올로 칼리아리(Paolo Caliari·1528∼1588)지만 베로나(Verona)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베로네세(Veronese)로 불렀다. 24살 때 베네치아로 이주해 화가로 활동하며 화려한 색감과 정교한 구도를 자랑하는 베네치아 화풍의 대가로 자리 잡았다.

30대 후반이 되면서 그림의 주제도 성경으로 돌아오고 색조도 조금 차분해졌다. 그의 색과 구도에 대한 연구는 후에 루벤스와 티에폴로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전창림 <홍익대 바이오 화학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