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형량 정할 때 ‘합의’보다 ‘피해 회복 정도’ 살펴야”

입력 2018-07-16 19:07 수정 2018-07-16 21:49

형사재판에서 형량을 감경할 때 피고인의 피해회복 노력뿐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실제 피해 회복 정도를 함께 고려하는 양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제는 우리 형법도 가해자를 엄벌하는 데 그치는 ‘인과응보법’에서 피해자의 회복과 함께 가해자의 사회 적응까지 도모하는 ‘회복적 사법’으로 나아갈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16일 ‘형사재판 양형을 통한 회복적 사법 이념 구현과 양형 인자로서의 합의’ 심포지엄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김혜정 영남대 로스쿨 교수는 ‘양형 기준에서의 합의’란 주제로 형을 정할 때 피해자·가해자 간의 합의를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해 발표했다. 김 교수는 “기존의 처벌불원이라는 형 감경요소는 피고인의 행위·관점으로만 판단돼 형사합의의 성격을 왜곡하고 있다”며 “‘피해 회복 정도’라는 피해자 관점에서 판단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문제는 피해자 관점 중심의 피해 회복 범위를 각 범죄에서 어떻게 규정하느냐다. 피해자가 실제로는 처벌불원 의사가 없는데도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금전보상만으로 형사합의하거나 피고인으로부터 합의를 종용 당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침해 법익을 나눠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절도나 사기 등 재산 범죄는 가해자가 피해 상당 금액을 공탁하는 것으로 피해 회복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살인·성범죄 등 범죄는 금전적 보상으로만 감경하기 힘든 만큼 피고인의 진지한 노력을 통해 피해자 측의 처벌불원 의사가 실제로 생겼는지를 중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김 교수는 진정한 화해 의사를 확인할 수 있도록 ‘피해자변호인제도’를 확대해 피해자가 변호인의 도움을 통해 진정한 처벌불원 의사를 진술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 합의가 이뤄졌는지 유형을 나눠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도연 청주지검 검사는 우선 “진정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표시된 처벌불원은 합의와 동일시할 수 없다”고 전제했다. 그는 피해자가 진심으로 합의하지 않은 채 표면적으로 처벌불원한 경우에는 피고인이 진심으로 범행을 뉘우치는 조건으로 감경이 가능하다고 봤다. 이어 피해자 거절로 합의에 실패한 경우에는 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더라도 진정한 합의에 이른 것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감경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