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국군기무사령부의 이른바 ‘계엄령 문건’(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과 관련해 군 기관들 사이에 오간 모든 문서·보고를 즉시 대통령에게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10일 인도 국빈방문 중 독립적인 특별수사를 지시했던 문 대통령이 불과 6일 만에 문건 작성을 둘러싼 의혹 규명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문건 내용이 상당 부분 실행에 옮겨진 게 아니냐는 판단을 한 것으로 관측된다.
문 대통령은 16일 오전 계엄령 문건에 기재된 기관인 국방부, 기무사, 육군본부, 수도방위사령부, 특수전사령부와 그 예하부대에 관련 문서·보고 제출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문건은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엄정히 수사하겠지만 이와 별도로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 실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계엄령 문건 실행이 준비되었는지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건 내용이 사실이라면 국가 안위와 관련된 심각한 문제”라며 “문건 내용이 실제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문서·보고가 제출되는 대로 유관 수석실을 총동원해 문건을 분석할 방침이다. 법률적 검토는 민정수석실이, 부대 운용 및 지휘 정황은 국가안보실이 맡는다.
청와대는 문건에 각 부대 병력 동원 및 집결 장소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된 점에 비춰 계엄령 선포 계획이 이행 초기 단계까지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기무사 구상 아래 수방사와 특전사, 육본까지 동원돼 이행 준비가 이뤄졌다면 절대 묵과할 수 없는 범죄라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다.
문건을 두고 야권에서는 단순 대비 차원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청와대는 이 역시 일축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반대로 내란이 아니냐고 주장하는 여론도 있다”며 “이를 분별하기 위해서라도 행동으로 어느 수준까지 이뤄졌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 지시에 따라 이날 오후 수방사령관 등 관련 부대 지휘관을 소집해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는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완벽하게 끝내기 위해 모든 지휘관은 대통령 말씀이 엄중한 명령임을 명심해야 한다”면서 “각 부대 지휘관들에게 2017년 당시 계엄령 준비 계기 등 모든 문건을 확인하고 최단 시간 내 제출할 것을 단호히 명령한다”고 말했다.
앞서 송 장관은 문 대통령 지시가 내려지기 30분 전 국방부 대변인을 통해 “지난 4월 30일 기무사 개혁 방안을 놓고 청와대 참모진과 논의를 가졌다”며 “과거정부 시절 기무사의 정치개입 사례 중 하나로 촛불집회 관련 계엄을 검토한 문건의 존재와 내용의 문제점을 간략히 언급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의 지시가 이날부터 시작된 특별수사단 수사에 지침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사안을 엄중히 대한다는 인식이 발표된 만큼 향후 수사진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청와대 참모진이 송 장관을 통해 내용 일부를 알고 있었던 점이 드러난 날 지시를 내린 점도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의 이례적 조치가 국방 개혁에 반발하는 군 내부 여론을 제압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계엄 계획, 초기 단계까지 실행에 옮겨졌다고 판단한 듯
입력 2018-07-16 1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