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한혜정] 나와 우리를 돌보는 정치

입력 2018-07-17 04:01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공유지가 있는 마을에서 오래된 관계망 안에서 장기 지속의 삶을 이어왔다. 그런데 최근 자본주의 문명은 좀 다른 방법을 택했다. 사람들을 외톨이로 만들면서 사유재산을 바탕으로 무한 발전코자 한 것이다. 외톨이가 된 사람은 수시로 불안과 무력감에 시달리고 망상에 빠져들게 된다. 우리 주변에서 끊이지 않는 우울한 소식과 극단적 불신, 적대와 혐오의 표출은 이런 변화의 산물이다. ‘마을공동체 기본법’ 제정은 이런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압축 성장을 거치면서 피폐해진 국가적 삶에 생기를 불어넣을 방안을 제시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무리한 근대화 프로젝트로 인한 대형 사고와 각종 송사를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도달했다. 복합적 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제 국가가 할 일은 관주도적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시민들에게 자원과 권력을 이양하는 것이다. 국가주도의 시대를 시민주도 시대로 전환해내지 않으면, 시민들의 지혜와 창의력을 부지런히 빌리지 않으면, 국가는 빠른 속도로 경쟁과 적대가 가득한 사회로 전락하게 된다. 이때 시민이란 ‘국가 바라기’를 하면서 권리 주장에 급급한 ‘이기적 국민’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려는 ‘포용적 시민’이자 자신을 제대로 돌보는 ‘주민’을 말한다.

정부는 1990년대부터 피폐해지는 농촌을 살려내겠다고 ‘마을’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급격한 도시화로 허물어지는 농촌 공동체를 살리겠다며 ‘정보화 마을’ ‘체험 마을’ 사업을 추진했다. 사업을 통해 마을에 주민을 위한 공적 공간이 늘어났고 귀농 주민과 원주민이 만나서 괜찮은 사업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주민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주민에 의한’ 공간들도 생겨났다. 공동육아를 시작으로 지역기반 교육운동과 먹거리운동을 펼치는 소규모 공간들이다. 소규모 공간을 갖게 된 주민들의 자발적 움직임은 자연스럽게 마을공동체 방향으로 진화했고 민관 협력의 새 모델로 떠오르기도 했다. 특히 서울 도심에서도 육아 품앗이부터 동네 부엌, 텃밭 가꾸기와 마을 인문학, 작은 도서관과 의료 공동체, 에너지 전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공동체적 활동이 이뤄져 왔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마을공동체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종합지원센터를 운영하는 등 마을공동체 확산을 위한 민관 협력의 장을 체계적으로 열어간 대표적인 지방자치단체이다.

마을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지혜를 나누고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장이다. 다양한 주민들이 편안한 복장에 슬리퍼를 끌고 가서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인 고민들을 꺼내놓고 의논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삶의 정치가 시작된다. 특히 태어나고 자라고(출산·양육·교육하고) 생산하고 소비하고 죽고 기억이 공유되는 ‘장소’로서의 마을은 활동공간이다. 마을 일은 수행돼야 할 ‘노동’이 아니라 자발적 ‘활동’이다. 중요한 것은 사업이 아니라 생기 있는 활동이 벌어지는 호혜적 공간이다.

마을에 있어야 할 공간은 수시로 들락거릴 수 있는 복합 주민 사랑방, 아이들이 찾아가면 언제든 먹거리와 놀거리가 있고 돌봐줄 형과 언니들이 있는 놀이터, 수시로 시민들이 장터를 열고 축제를 벌일 수 있는 활동의 공간이다. 지자체는 그런 공간을 제공하고 제대로 임자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줄 알면 된다. 공무원인지 주민인지 분간이 안 되는 공무원은 많을수록 좋고, 관리자와 사용자 구분은 적을수록 좋다. 이런 마을 활동은 자연스럽게 리더들을 만들어낼 것이고 아주 많은 새로운 일거리와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사실상 마을공동체 기본법은 개인 안에서 움터 나오는 마을살이 욕구를 사회적 가치로 이어주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법이다. 나는 주민들이 주변 환경부터 노인 돌봄까지 크고 작은 문제를 제대로 풀어내는 마을, 아빠가 혼자서도 아이를 즐겁게 키울 수 있는 마을, 고독사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마을을 꿈꾼다. 이는 기본소득제도와 같이 갈 때 좀 더 빨리 실현될 꿈이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