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11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창업에 나서는 것도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잃을 게 없는 20대 젊은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말리는 이도 많았다. 그래도 기술과 경험을 믿었다.
‘시니어 창업가’. 이강모(44·사진) 필앤텍 대표를 지칭하는 말이다. 창업 3년밖에 안 됐지만 올해 매출 12억원을 목표로 한다. 지난해엔 매출 9억원을 올렸다. 1인 기업으로 출발했고 최근에야 직원 1명을 둔 걸 감안하면 엄청난 성과다.
이 대표는 과로로 병원 신세를 졌던 2014년 가을, 퇴사를 결심하고 이듬해 3월 사표를 냈다. 밖은 생각보다 더 추웠다. 딸 둘을 둔 가장으로서 마냥 쉴 수 없었다. 그렇게 창업으로 다가섰다. 5개월가량을 준비한 끝에 2015년 8월 필름 제조·개발업체 필앤텍을 세웠다. 다양한 필름 소재를 필요로 하는 기업의 요구에 맞게 ‘제조 레시피’를 짜고 협력업체에 맡겨 맞춤형 제품을 생산한다. 수요 업체와 공급 업체를 잇는 ‘다리’인 셈이다.
창업 아이디어는 직장 경험에서 나왔다. 이 대표는 오랜 직장생활이 없었다면 애초에 ‘틈새시장’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고분자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딴 이 대표는 2005년 필름제조 업체에 입사해 9년을 연구·개발(R&D) 부서에서 근무했다. 신소재 연구에서 생산기술 개발, 품질관리 등으로 업무 영역은 넓어졌다. 열심히 일했고 전략기획팀장이라는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시야가 확 달라졌다. 지난 11일 경기도 오산대학교 안에 차려진 필앤텍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R&D 부서에선 필름이라는 소재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기획 부서에선 시장 전반을 조망하고 사업을 기획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게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첫걸음을 떼는 건 만만찮았다. 세무, 회계, 노무관리 등 알아야 할 게 많았다. 시니어 창업가에게 공간을 주고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경기시니어기술창업센터에서 ‘밑바닥’부터 배워야 했다. 이 대표는 “기술을 갖고 뛰어들었는데도 수시로 벽에 막혔다. 20, 30대 청년들이 어렴풋한 아이디어만 갖고 뛰어들어서는 성공할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성공에 바짝 다가선 편이다. 비결을 경험과 기술이라고 본다. 주변의 20대 창업가들은 수없이 도전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실제로 경험과 기술을 자산으로 하는 시니어 창업은 청년 창업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다. 15일 통계청의 기업생존율 지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40대 창업가가 세운 기업의 5년 생존율이 29.9%, 50대는 30.6%에 이른다. 20대 이하의 16.2%를 크게 웃돈다.
나이와 혁신은 아무 관계가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의 ‘20대 청년 창업의 과제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2014∼2015년 40대 창업가가 세운 기업 가운데 ‘혁신형 창업’으로 인증받은 비중은 1.7%에 이른다. 30대 이하의 0.3%보다 5배 높다.
요즘 이 대표에게도 고비가 닥쳤다. 한 단계 도약하려면 자금 투입이 필요한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창업융자사업은 대부분 ‘39세 미만 청년’을 대상으로 한다. 그는 “창업 정책이 너무 청년과 4차 산업혁명에 치우쳐 있다. 현실을 감안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꼬집었다.
혁신성장, 창업 활성화를 추진하는 정부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다. 기획재정부 혁신성장본부 관계자는 “청년·시니어·사내 창업 등 다양한 창업 영역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맞춤형 정책을 설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오산=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창업은 청년보다 산전수전 다 겪은 4050이 더 잘해요”
입력 2018-07-16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