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딜레마에 빠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를 잡아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에 감리조치안을 보고했지만 ‘재감리’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사상 초유의 재감리 명령에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금감원 안팎에선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고의적 분식회계라는 기존 주장을 관철하려면 금감원은 재감리에서 새로운 논리와 증거를 찾아야 한다. 다만 이미 했던 감리를 다시 하면서 새로운 문제점을 찾기 쉽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분식회계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참여연대는 15일 “강제수사권이 없는 금감원이 재감리를 해도 실익이 없을 것”이라며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증선위는 바이오젠의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 공시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로 누락했다고 보고 검찰에 고발 조치키로 결정했다. 콜옵션 공시 누락과 더불어 분식회계 여부, 고의성 등이 모두 검찰 수사에서 함께 다뤄질 수도 있다.
일단 금감원은 재감리에 착수한다. 금감원은 지난 13일 출입기자단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 “증선위가 지난 6월부터 심사숙고해 결정한 내용을 존중한다. 증선위 요구사항을 면밀히 검토해 구체적 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재감리는 금감원으로서도 처음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어떤 절차로 재감리를 진행할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증선위와 금감원의 시각 차이가 좁혀질지도 관건이다. 금감원은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회계처리를 변경한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회계처리 기준을 바꾸면서 지분 가치를 과대평가했고, 이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015년 1조9094억원 당기순이익으로 귀결됐다는 입장이다. 반면 증선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012∼2014 회계연도 회계처리의 적정성부터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증선위원은 “증선위원들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계속 종속회사로 처리하는 것이 맞는다고 보느냐’고 물었지만 금감원은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며 “결국 문제제기가 이뤄진 후 (논의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던 셈”이라고 전했다. 금융권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 순방 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악수도 했는데, 실무부서도 이젠 출구전략을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한편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당분간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13일 전일 대비 6.29% 하락한 40만2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시가총액(26조5983억원)은 연고점을 찍었던 지난 4월 11일(38조6403억원)과 비교해 12조원가량 빠졌다.
시장에선 재감리를 통해 분식회계로 결론이 나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폐지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내다본다. 대우조선해양,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전례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은 분식회계가 적발돼 형사재판까지 받았지만 기업의 계속성, 투자자 보호 등이 고려돼 상장폐지에 이르지 않았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삼바 재감리’ 딜레마에 빠진 금감원, 결국 검찰 조사로 가나
입력 2018-07-15 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