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은 빠지고, ‘을’들만 힘든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임금 인상의 그늘

입력 2018-07-15 18:20 수정 2018-07-15 21:32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0.9% 오른 8350원으로 결정되면서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생계에 위협을 느낀다며 동맹휴업을 추진하는 등 집단행동을 예고하며 정책 불복(不服)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노동 약자의 소득 증대가 소비 확대를 불러 경제에 선순환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2년 사이 30% 가까이 오른 최저임금 때문에 저소득층 일자리가 줄어드는 역설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최저임금 인상의 피해가 소상공인과 저임금 노동자에게 집중되면서 대기업 등 ‘갑(甲)’은 빠진 ‘을(乙)과 을의 싸움’만 격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서울 중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강모(43)씨의 월 매출은 4000만원이다. 평균 25% 이윤(마진)을 감안하면 수익은 1000만원이다. 그러나 가맹본사에 수수료 350만원을 지급하고 아르바이트생 3명의 인건비 360만원과 임대료 100만원, 각종 세금 및 운영비 90만원을 빼면 강씨에게는 약 100만원이 남는다. 그는 15일 “지금도 아르바이트생보다 적게 돈을 버는데 최저임금이 더 오르면 편의점을 운영하기 버거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가맹본부와 계약기간이 남아 있어 편의점을 폐업할 수도 없다. 편의점은 가맹본부와 보통 한 번에 5년 계약을 하는데 2년 매장 운영 후 폐업을 하면 평균 3000만원의 위약금을 내야 한다. 소상공인연합회에 소속된 편의점 가맹점주들은 월평균 수익이 지난해 195만원에서 올해 최저임금 인상 이후 130만2000원으로 줄었다고 최근 발표했다.

PC방을 운영하는 구모(39·서울 영등포구)씨는 “올해부터 아르바이트생 고용시간을 하루 10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이고 직접 하루 12시간씩 일한다”며 “인건비는 더 드는데 매출은 갈수록 떨어져 가게를 내놔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소상공인들은 살길을 찾기 위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는 심야시간 판매하는 상품에 할증 개념으로 가격을 10∼20%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이번 인상 결과에 대해 “기대에는 못 미친다”는 반응이다. 패스트푸드점 배달 일을 하는 한규성(26)씨는 “매일 2500원을 교통비로 지출하고 아껴도 한 끼에 6000원 미만의 식사거리를 찾기 어렵다. 월세를 내고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진 빚을 갚느라 매달 40만원 이상 소비한다”며 “물가는 계속 오를 것 같아 최저임금이 인상돼도 크게 와닿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알바연대알바노조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하기 어려운 자영업자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국 대기업 같은 갑을 제외한 을과 을의 고충이 더해진 것”이라며 “소상공인이 겪는 ‘본사의 물량 밀어내기’와 같은 부당행위에 대한 정부의 엄격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경기 안정화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앞선 최저임금 인상 이후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대기업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경제 민주화 입법, 대기업 노조의 임금 인상 자제와 연대임금 정책 등 보완정책이 병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경쟁정책, 가격정책, 사회보장정책 등을 보완하지 않는다면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의도한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